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3년 반 가량 남은 시점에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는 흥미거리에 불과하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눈길을 끈다. 범진보 진영에선 이낙연 국무총리가, 범보수 진영에선 황교안 전 총리가 1위를 차지했다. 박원순, 김부겸, 유시민, 심상정, 이재명, 김경수, 임종석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친 이 총리와 유승민, 홍준표, 안철수, 오세훈 등을 따돌린 황 전 총리의 부상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두 사람 다 그 동안 ‘존재감 없는 자리’로 인식돼온 총리라는 공통점에, ‘문재인의 총리’대 ‘박근혜의 총리’라는 묘한 구도도 호사가들의 관심을 모은다.
▦ ‘국회 대정부질문 어록’이 나돌 만큼 이 총리의 가장 큰 강점은 ‘언어 정치’다. 기자 출신답게 단단한 팩트와 반문하기, 동의하기 등의 다양한 화법은 상대방의 예봉을 피하고 지지자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지난해 대정부질문에서 “MBC, KBS뉴스를 보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옛날부터 좀 더 공정한 방송을 보고 있다”는 답변은 그에게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이 총리의 존재감은 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은 거의 걸러진 적이 없고, 올해는 대통령 대신 첫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받았다. ‘군기반장’으로 불릴 정도의 내각 장악 능력은 ‘책임총리’에 가깝다는 평가다.
▦ 보수진영에서는 황 전 총리의 안정감과 정제된 언행에 점수를 주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때 비등한 차출론에도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를 지킨 것을 높이 평가한다.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등 낙선한 대선후보들과는 달리 ‘아직 써보지 않은 카드’라는 점은 보수층의 기대를 키운다. 지난달 수필집 출판기념회로 정치 활동의 신호탄을 쐈으면서도 친박계 의원들의 내년 초 전당대회 출마 요구에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도 몸값을 올리는 요인이다.
▦ 하지만 이들의 앞길에 마냥 꽃길이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종속적 이미지와 민주당 내 역학관계, 여권 잠룡들의 견제 등이 변수다. 활동성이 강한 총리 자리가 주는 반사이익이 계속 유지될 지도 미지수다. 정치 초년병인 황 전 총리의 앞날은 더 험난하다. 전당대회 출마 순간 온갖 검증 포화로 자칫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같은 중도 낙마사태가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 후계자’ 이미지가 덫이자 족쇄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