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66)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와 배임ㆍ횡령 등 각종 경영비리 혐의로 1심에서 법정구속된 신동빈(63) 롯데그룹 회장이 서울구치소 수감 234일 만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원은 신 회장 혐의에 대해 박근혜(66) 전 대통령, 신격호(96) 롯데그룹 명예회장 책임이 훨씬 크다고 봤다. 앞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아 출소한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어 신 회장까지 석방되면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수감됐던 기업 총수가 모두 풀려나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롯데면세점 사업권 재승인을 청탁하는 대가로 비선실세 최순실(62)씨 측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건넸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청탁 대상인 면세점 재취득이라는 현안이 존재했고, 박 전 대통령이 현안 자체와 자신의 권한을 잘 알고 있었다” “대가성을 인식하며 7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는 면세점 특허 취득이라는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묵시적 부정 청탁’이 있었다고 본 1심 판단과 동일하다.
그러나 뇌물공여 혐의만으로도 실형이 나왔던 1심과 달리 집행유예가 선고된 데는 신 회장의 뇌물공여가 박 전 대통령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재판부 판단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먼저 적극적으로 지원을 요구해 신 회장이 수동적으로 응한 것”이라며 “요구에 불응할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직ㆍ간접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70억원 지원은 이러한 두려움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강요죄 피해자가 뇌물공여죄로 기소돼 처벌받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며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뇌물공여 책임을 엄히 묻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의 경영비리 관련 혐의가 1심과 달리 일부 무죄로 인정된 것도 집행유예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 앞서 1심은 신 명예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58)씨 모녀에 대한 허위 급여 지급과 관련해 신 회장 책임을 일부 인정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신 회장이 아버지 지시로 인한 급여 지급을 알면서도 제지하지 않고 용인했다는 것만으로 공동정범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을 총수 일가에 몰아준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동일하게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범행을 지시하고 주도한 신 명예회장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며 상대적으로 신 회장의 책임은 무겁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항소심에서 롯데 관련 혐의가 재차 인정되는 등 불리한 상황을 맞았던 신 회장이 예상 밖의 집행유예를 받은 데는 흩어진 사건을 한 재판부로 모은 전략도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경영비리 1심에서 징역 1년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국정농단 1심에서 징역 2년6월 실형을 선고 받고, 따로따로 항소심 재판을 진행하던 신 회장은 4월 재판병합을 신청한 바 있다.
재판부는 배임ㆍ횡령, 탈세 등 혐의를 받았던 신 명예회장에 대해 1심보다 1년 적은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만 96세 고령이고 건강이 상당히 악화해 장기간의 수형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배임 혐의로 1심 실형을 선고 받았던 신영자 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은 집행유예(4년)로 이날 석방됐다. 또 배임ㆍ횡령 혐의를 받았던 서미경씨에게는 “영화관 매점 특혜 등을 알면서도 용인했을 뿐 공범으로서의 죄책을 물을 수는 없다”고 1심(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달리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실형이 나온 1심과 비교해 사정 변경이 없는데도 (신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대법원 상고 방침을 밝혔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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