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끝에 시행 여부가 1년 미뤄졌던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이 조기 철회됐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첫 작품이다. 교육 현장의 반발을 수용한 것이지만, 이럴 경우 초등 1ㆍ2학년만 영어교육의 공백지대로 남으면서 현장 반발과 혼선은 계속될 전망이다.
유 부총리는 4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학부모들이 유치원 방과 후 영어가 금지되면 사교육이 더 늘 것이라는 우려를 많이 해 놀이중심으로 선택 기회를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다”며 철회 방침을 공식화했다. 교육부는 유 부총리 답변 직후 자료를 내고 “학부모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방과후 영어를 전면 금지할 경우 불필요한 사교육을 조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영어교육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가 정규교육이 아닌 노래와 게임, 음악 등 ‘놀이중심’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으나 이날 발표는 당초 초등 3학년 이전 영어교육을 전면 금지하기로 한 정부 구상과 배치된 조치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말 초등 1ㆍ2학년과 마찬가지로 유치원 방과후 영어 금지 정책을 밀어붙이려다 반발 여론에 밀려 일주일 만에 결정을 1년 유예했다. 시행 여부는 정책숙려제 2호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었다. 교육부는 유치원이 이듬해 학사일정 마련을 매년 11월이면 끝내는 점을 고려해 영어교육 허용을 조기에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유치원들은 학부모 수요를 조사한 뒤 운영위원회 심의ㆍ자문을 거쳐 방과후 영어 특별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초등 1ㆍ2학년이다. 올해 3월부터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의 적용을 받는 초등 1ㆍ2학년 학생들은 정규수업은 물론, 방과후에도 영어를 배울 수 없다. 당초 유치원도 방과 후 영어 수업을 금지하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치원은 영어교육이 허용돼 초등 저학년만 영어교육의 섬처럼 남게 되면서 형평성 차원에서 금지 정책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게 자명하다. 6세 아들을 둔 학부모 김유진(35)씨는 “놀이중심 영어학습이 듣기에는 좋지만 결국 문법수업을 받지 않고 초등 3학년에 진학하게 되는 셈”이라며 “초등 저학년 교육에서 이 틈을 메우지 못하면 결국 학습지나 학원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교육부도 “유ㆍ초등 영어교육의 일관성을 위해 이른 시일 안에 초등 방과후 과정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종합적 검토를 하겠다”고 밝혀 철회 여지를 남겼다. 또 유 부총리가 앞서 인사청문회에서 “공교육정상화법이 (1ㆍ2학년 방과후 영어교육을) 제한하고 있지만 현장의 요구는 다르다”고 언급한 만큼 재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 다만 교육부 지침으로 허용 여부가 결정되는 유치원 방과후 과정과 달리 초등 방과후는 법률로 제한된 사안이라 당분간 공백을 메우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교육관과 직결되는 정책들이 하나씩 뒤집혀 설익은 추진으로 교육현장의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도 8월 확정된 대입 개편안에서 중장기 과제로 미뤄져 현 정부에서는 없던 일이 돼버렸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장관이 교체되자마자 이틀만에 한 정책결정이 유아 발달 및 공교육의 본질과는 상반돼 결국 학생ㆍ학부모의 혼란만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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