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사는 게 훨씬 싸니까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은미(27)씨는 서울 서초구 집 근처 약국에서 동물의약품을 산다. 심장사상충연고 등 개에게 지속적으로 꼭 필요한 기본 약품을 구할 수 있어서다. 이씨는 “진료를 받은 뒤에야 약을 살 수 있는 동물병원과 달리 약국은 일단 진료비가 들지 않으니, 개가 아파하지 않으면 굳이 동물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약국에서 동물의약품을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고 덧붙였다.
동물의약품을 판매하는 일반 약국이 늘면서 약사와 수의사 간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기존에 동물의약품을 취급하던 수의사는 약사가 잘못된 처방을 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반면, 약사는 동물의약품 또한 약품 전문가가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동물의약품을 파는 약국은 전체(2만1,000여 곳)의 4분의 1이 넘는 5,160곳이다. 취급하는 약품은 피부병치료제 등 대개 반려동물에겐 상비약품에 속한다. 관련법 상 약사의 동물의약품 판매는 문제 없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동물의약품시장 규모는 2015년 6,540억원에서 2020년 7,800억원으로 커진다. 이런 추세라면 동물약품을 파는 약국 역시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의사들은 탐탁하지 않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흔히 쓰이는 심장사상충연고라도 반려동물 몸 상태에 따라 고혈압이나 색전증 등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라며 “약사가 약 전문가인 것은 맞지만, 동물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 “반려동물 몸무게 정도만 물은 뒤 약을 건넨다”는 약사도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동물의약품 처방 시 약사가 투약지도를 약 구매자에게 반드시 해야 하지만, 일부 약사는 약 포장 겉면에 적힌 내용을 일러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약사들은 반려동물이 대부분 사람과 같은 포유류라는 점을 꼽는다. 약품이 몸 속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유사하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동물약품비가 많이 드는 상황에서 약품 전문가에게 상담과 조언을 듣고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약국”이라고 강조했다.
수의사와 약사 간 일종의 밥그릇싸움을 지켜보는 소비자들은 헷갈린다. 홍유주(28)씨는 “전문성을 생각하면 동물병원이 맞지만, 가격을 따지면 약국이 더 나은 게 사실”이라며 “동물의약품 가격이 너무 비싸 온라인을 통해 해외 직구(직접구매)를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결국 동물의약품 가격의 거품을 빼고, 관련 보험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바람이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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