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외국 자본이 투입된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이 정부의 사업계획 승인까지 받아놓고도 결국 백지화됐다. 녹지국제병원은 그동안 개설 허가 여부를 놓고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어왔지만 제주도민을 상대로 진행된 공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아 최종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됐다.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6개월 간에 걸쳐 진행된 공론조사 결과 제주도에 ‘녹지국제병원 개설 불허’를 권고하기로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최종 개설 허가권자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그동안 공론조사위의 권고안을 최대한 존중해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사실상 불허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공론조사위에 따르면 지난 3일 도민참여단(1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종 설문조사 결과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하면 안된다’고 선택한 비율이 58.9%(106명)로, ‘개설을 허가해야 된다’고 답한 38.9%(70명)보다 20.0%포인트 더 많았다. 나머지 2.2%(4명)는 판단을 유보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95%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5.8%포인트다.
이날 공론조사 결과에 따라 도가 최종적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불허하면 녹지국제병원측이 막대한 비용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는 등 후폭풍이 예상된다. 녹지국제병원은 의료관광 활성화를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업계획서를 승인 받았다. 이어 지금까지 788억원을 투입해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에 병원 건립을 완료했다. 또 병원 인력도 의사 9명, 간호사 28명, 국제의료 코디네이터 18명 등 134명을 이미 채용하는 등 도의 개설 허가만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나 개설 허가를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면서 도는 6차례 허가 연기를 하는 등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가, 지난 2월 시민사회단체가 숙의형 정책개발 청구서를 제출함에 따라 공론조사를 실시하게 됐다.
이번 공론조사에서는 녹지국제병원이 제주에 들어서면 의료관광 효과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풍부한 외국 자본을 바탕으로 질 높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영리병원이 현행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위협하는 등 공공의료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하는 도민들이 더 많았다. 실제 공론조사에 참여한 도민참여단 중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반대한 이유로 ‘다른 영리병원들의 개원으로 이어져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될 것 같아서’(6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유사사업 경험이나 우회투자 의혹 등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12.3%), ‘병원의 주기능인 환자 치료보다 이윤추구에 집중할 것 같아서’(11.3%) 등이 제시됐다.
허용진 공론조사위원장은 “권고안에는 녹지국제병원을 비영리병원 등으로 전환시켜 헬스케어타운 전체의 기능이 상실되는 것을 방지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행정조치를 마련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며 “이번 공론조사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도민의 참여와 숙의과정을 통해 정책결정을 내렸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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