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새로 찾아 보훈처에 요청
도산 안창호 선생 조카딸인 안맥결(1901~1976) 전 서울여자경찰서장을 비롯,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나섰지만 입증자료가 부족해 서훈을 받지 못했던 경찰관 5명에 대한 유공자 등록이 추진된다.
경찰청은 최근 새롭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훈을 못 받은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들의 독립유공자 심사를 국가보훈처에 요청했다고 3일 밝혔다.
서훈 등록을 추진하는 경찰관은 안 전 서장을 비롯, 문형순(1897~1966) 전 제주 성산포경찰서장, 양한나(1893~1976)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 이양전(1911~사망일 미상) 전 부산여자경찰서장, 최능진(1899~1951) 전 경무부 수사국장 등 5명이다. 미군정 하에서 여경이 도입되면서 1947년 2월 처음 설치된 여자경찰서는 업무 중첩 등의 이유로 1957년 폐지됐다.
안 전 서장은 1919년 평양 3ㆍ1운동과 숭의여학교 10ㆍ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구금됐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을 담당했던 여성독립운동단체 ‘결백단’ 임원이었다. 그는 1937년 일제가 조선 지식인과 명망가의 독립의지를 꺾기 위해 표적수사 등을 벌였던 이른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수배돼 붙잡힌 뒤 만삭의 몸으로 1개월간 투옥, 고문을 당했다. 보훈처는 그간 “최소 3개월의 옥고가 확인돼야 한다는 공적심사 기준에 미달한다”며 안 전 서장에 대한 서훈심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훈처가 최근 수감 기간 하한 기준을 없애겠다고 밝혔고 안 전 서장이 결백단 단원이라는 사실이 기재된 입단 이력서를 찾아내 활동기간도 증명할 수 있어 서훈 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전 서장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4월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 ‘국민부’에서 중앙호위대장을 맡는 등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지만 입증자료가 부족해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경찰청은 최근 문 전 서장의 인사기록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명부를 발견해 보훈처에 보냈다. 문 전 서장은 제주 4ㆍ3사건 당시 상부의 민간인 총살 명령을 거부해 200여명의 목숨을 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군정 하에서 제1기 여자경찰간부로 임용된 양 전 서장은 1919년 3ㆍ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상하이와 부산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집해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양전 전 서장은 1919년 3월 1일 경성여고보 동료들과 비밀단체를 조직, 3ㆍ1 선언서와 전단을 찍어 배부하는 등 3ㆍ1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최능진 전 경무부(현재 경찰청 해당) 수사국장도 독립운동 활동 중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 선생과 함께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경찰은 이 밖에도 조병옥 초대 경무부장을 비롯한 9명의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을 발굴했으며 이들은 이미 유공자로 등록된 상태다.
경찰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경찰 정신의 표상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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