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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특이점이 온다

입력
2018.10.03 14:5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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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비스 크리에이션스(Abyss Creations)는 1996년부터 리얼 돌이라는 섹스인형을 만들었다. 개당 6,500달러(715만원)나 하는 리얼 돌은 매해 약 350개씩 팔렸고, 2009년에는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고자 16가지나 되는 차별화된 모델을 내놓았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이자 섹스광으로 소문난 하워드 스턴은 이렇게 소리쳤다. “이제까지 해본 섹스 중에 최고! 신에게 맹세할 수 있습니다! 리얼 돌이 진짜 여자보다 느낌이 더 좋아요!” 피터 노왁의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문학동네, 2012)에 나오는 일화다.

최근 캐나다에 주소를 둔 킹키스 돌스(Kinkys Dolls)는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섹스인형을 이용한 성매매 업소를 개장하려고 했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업소는 고객이 진열돼 있는 섹스인형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인형을 고르면 따로 방을 내주고 성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섹스인형을 대여하는 시간은 30분에서 2시간 사이이며, 가격은 30분에 60달러(6만6,000원)다. 킹키스 돌스는 지난해 캐나다 토론토에 섹스인형 성매매 업소 1호점을 열었다.

일본에서는 인형과 섹스를 할 수 있는 윤락업소가 별 문제되지 않는다. 1960년대에 일본 과학자들은 남극 대륙에 있는 일본 기지로 떠나면서 성욕해소용 공기인형을 가지고 갔으며, 세계 최대의 섹스인형 제조업체인 오리엔트 인더스트리(Orient Industry)는 1,300달러(143만원)에서 6,900달러 사이의 섹스인형을 한 달에 약 50개씩 국내와 해외에 팔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말한다. “우리는 오타쿠나 인형을 보고 성적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좀더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제품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섹스인형은 배우자와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는 남성들을 불륜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고, 신체적 결함이 있거나 사교성이 없는 남성들을 위안해 준다.

아무리 정교해 봤자 섹스인형은 아무런 감정 없는 섹스 장난감(sex toy)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성과가 합쳐진 섹스로봇은 최소한 반려동물 수준의 감정을 갖추게 된다. 작가이자 의사인 로랑 알렉상드르와 대담을 나눈 프랑스 철학자 장 미셸 베스니에는 ‘로봇도 사랑을 할까’(갈라파고스, 2018)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반려동물에게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습니까. 로봇이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면 성생활에도 개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의 충동적인 흥분을 받아주고 이 흥분을 잠재워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로봇은 이상적인 성적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전문가들은 앞으로 10~30년 안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로봇과 섹스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을 하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섹스로봇은 애인의 욕구를 무한정하게 수용하는 한편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사이의 성관계를 섹스로봇에게 위탁(outsourcing)시켜버린 극단적인 형태는 성관계 없는 부부 생활이다. 남편과 아내는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 다음, 각자의 섹스로봇을 대동하고 자신의 침대로 들어간다. 고집 세고 융통성 없는 도덕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섹스의 목적은 생식이라고 설교해왔던 바, 섹스로봇이 일상화된 미래의 인간 부부는 오로지 자식을 낳기 위해서만 짧은 교미를 할 것이다(다시 말해 동물이 된다).

섹스로봇이 젠더(gender)와 성차(性差)의 경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클라우디아 스프링거는 ‘사이버 에로스’(한나래, 1998)에서 섹스로봇의 육체는 “과장될 정도로까지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섹스로봇이 상투화된 남녀 성별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포함한 반동성애 운동가들의 동성애 혐오는 동성애가 반자연적이라는 것에 근거한다. 하지만 섹스로봇의 출현과 필요는 인간 사이의 이성애와 생식에 성을 한정시켰던 이들의 주장을 발밑에서부터 허물어뜨린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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