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째 끌어온 흑산공항 건설에 대한 심의가 중단되면서 흑산공항 건설 여부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환경보호’냐 ‘지역주민의 교통기본권 보장’이냐를 두고 찬반 양측이 첨예하게 엇갈린 가운데 정부가 결국 어느 한쪽의 손도 들어주지 못하고 결정을 미룬 꼴이 되면서 사회적 논란과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사업자가 다시 보완한 서류를 제출하면 또다시 같은 과정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 도대체 언제까지 소모적인 갈등을 지속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쏟아진다.
환경부는 2일 흑산도에 소규모 공항을 건설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계획 변경’ 방안에 대한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사업자인 서울지방항공청이 제124차 국립공원위원회 개최 안건인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계획 변경’ 관련 서류를 보완해 다시 제출하겠다는 공문을 어제 제출했다”며 “현재 정회 중인 제124차 위원회는 자동 폐회됐다”고 전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제124차 위원회는 사업자의 재보완서에 대해 심의하기 위해 열린 것인데 사업자가 추가 보완해서 제출하겠다고 함에 따라 심의안건 자체가 없어지면서 자동폐회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로선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사업자가 심의 안건인 ‘재보완 서류’를 추가 보완해 다시 제출하면 국립공원위원회를 다시 개최해 심의를 해야 한다.
사업자가 심의 통과가 예상되면 심의까지 가고 결과가 좋지 않게 예상되면 발을 뺄 수 있도록 한 탓에 흑산공항 건설 여부 결정은 또다시 기약없이 미뤄지게 됐다. 사업자는 국립공원위원회 위원 25명 가운데 15명을 차지하는 민간위원 다수가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표결이 이뤄질 경우 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발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환경단체 관계자는 “장관 교체 등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면 다시 심의를 요청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다”고 전했다.
환경부는 이번 심의 중단이 절차상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하지만, 자연공원법상 국립공원위원회 운영규정의 이런 허점을 정부가 그동안 방치해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심의가 종료되기 전까지 얼마든 추가 보완을 요청하면 새로 심의를 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이해집단이 악용할 경우 사회적 비용만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원은 “정부가 위원들과 협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심의 중단을 통보한 것은 월권 행위”라며 “정부의 갈등조정 능력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비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흑산공항은 여러 측면에서 부당하다는 점이 분명해졌음에도 조금 더 보완하겠다는 사업자의 입장이 사실상 받아들여졌다”며 “사업자 스스로 계획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2009년 처음 추진된 흑산공항 건설은 사업의 안전성, 환경성, 경제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파행을 거듭해왔다. 사업자가 제출한 ‘공원계획 변경요청서’(2016년 10월)와 보완서(2017년 7월), 재보완서(2018년 2월)는 철새대책, 환경수용력, 경제성 등을 이유로 국립공원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또다시 최종 결론을 미룬 상태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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