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성수기를 노린 이른바 ‘텐트폴(Tent Pole)’ 영화일수록 손익분기점이 주된 ‘화두’다.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입만 열면 손익분기점 타령이다.
이제는 평범한 일반 관객들까지도 “그 영화, 손익분기점이 몇 만이야?” “손익분기점이 몇 만이라는데 어떡해” 등과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실제로 극장에서 자주 듣는 대화 내용이다. 한마디로 ‘전 관객의 영화산업 종사자화(化)’가 이뤄지고 있다.
올 한가위 연휴를 뜨겁게 달굴 뻔 했던 ‘머니 게임’이 싱겁게 막을 내렸다. 연휴를 일주일여 앞두고 가장 먼저 출발한 ‘물괴’를 시작으로 ‘안시성’ ‘명당’ ‘협상’ 등 꽤 많은 제작비를 들인 네 편의 한국영화가 그저그런 흥행 성적표를 손에 쥔 채 관객들의 관심권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역시나 손익분기점이 중요하기에 관객수를 헤아려 순위를 가리게 되지만, 올해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얼마나 벌었나’ 보다는 ‘얼마나 잃었나’를 따져야 할 만큼 네 편 모두 흥행이 신통치 않아서다. ‘명절엔 한국영화’란 흥행 공식을 맹신해 무조건 들이대고 본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의 ‘제 살 깎아먹기’ 식 경쟁이 빚어낸 결과다.
이쯤 되면 내년 설과 추석이 벌써부터 걱정될 정도다. ‘명절 연휴 흥행에 실패하면 한해 농사를 망친다’는 산업적 우려가 아니다. 올 추석마냥 볼 만한 한국영화가 없을까봐, 보고 나면 실망만 하게 되는 한국영화들이 또 수두룩할까봐 드는 고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업계의 산업 논리’에 포섭된 듯 싶다. 영화를 선택하고 소비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인 완성도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어느 수준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특정 시기에 개봉되는 한국영화일수록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봐 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알게 모르게 강요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 영화계가 독창성은 외면하고 치열한 고민은 접어둔 채 성공했던 국내외 기존 작품들을 답습하기 급급한 와중에도, ‘명절엔 한국영화’ 내진 ‘의미있는 첫 시도를 인정해달라’ 식의 응석만을 습관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매년 명철 연휴마다 개봉되는 한국영화들 전부가 좋을 순 없다. 그러나 이번 한가위 연휴처럼 반찬 가짓수는 많은데 막상 젓가락을 들면 먹을 게 없는 싸구려 ‘무늬만 한정식’ 같아선 곤란하다. 맛있고 정성 가득한 명절 차례상이 절실하다.
조성준 기자 when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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