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 얼굴을 48세라고 보겠어!” 추석 연휴 오랜만에 텔레비전에 나온 여자 톱 탤런트를 보면서 동생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의학 기술, 헬스 산업이 날로 발전하면서 한국인 생체시계는 개인차가 극심하게 벌어졌고 ‘노화는 투자한 돈과 시간에 반비례한다’고 믿는 동생은 하루 3시간씩 운동하는 헬스 중독자가 됐다.
내 동생 같은 개개인의 분투는 사회 변화로 이어졌다. ‘몸짱 아줌마’가 신조어로 등장한 때가 2003년, 인터넷신문에 다이어트 체험기를 연재하며 화제가 된 주부 정다연씨의 당시 나이가 37세다. 20대 같은 건강미로 ‘원조 몸짱’으로 불렸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나이 가늠이 어려울 만큼 어려 보이는 30~40대는 내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탈코르셋 운동’이 전개되는 시점에서 이 무슨 반시대적 발언이냐는 지적은 잠시 접어두자. 내가 궁금한 건 젊음이 권력이자 자산으로 작동하는 한국에서 왜 정신을 젊게 관리하는 이는 보기 드무냐는 거다. 외모 가꾸는 게 직업이 아닌 사람도 필사적으로 몸을 젊게 가꾸는데, 왜 시대정신을 고민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조차 10년, 20년 전 사고는 바꾸지 않느냐는 거다.
‘정신 노화’가 심기에 거슬리기 시작한 건 정치인의 ‘아무 말’ 중에서도 독보적인 충격을 준 ‘출산주도성장론’을 듣고 나서다. 한국어의 ‘빈약하고 불완전한(소설가 김훈)’ 특징은 말과 글로 밥 먹고 사는 정치인, 지식인이 제대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 탓(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영어가 위대하지 않은 언어일 수 있다는 의구심이 들었듯)이 크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 말을 듣고 월급명세서에서 빠져나가는 세금 액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이 안 낳을 확률이 낳을 확률보다 좀 더 많아진 내가 미래세대 성장에 미약하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겠다는 소신을 꺾었다.
‘동물은 생존의 위협을 받는 환경에서 스스로 번식을 억제한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최근 저서 ‘선망국의 시간’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해 “위협받는 환경을 감지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 통찰력 있는 청년들에게 푼돈을 주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고 아이를 낳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책보다 ‘당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만든 준거집단은 누구입니까, 누구와 토론을 했습니까’ 이런 질문이 중요하다”(네이버캐스트 ‘조한혜정의 서재’)고 반박한 그는 전환의 시대마다 준거집단을 바꿔가며 사유를 확장했다. 국내 드문 ‘잘 관리된 젊은 정신’을 담은 이 책은 저출산 문제에 대처하는 정치인에게 “근대의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1차 근대의 언어에서 확실하게 벗어나라”고 제언한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거란 걱정과 저출산이 노동력 감소, 경제력 감소로 이어진다는 프레임은 얼핏 봐도 앞뒤 맥락이 상반되지 않나. 경제학자 요시카와 히로시는 지난해 국내 출간한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에서 각종 통계를 통해 일본의 경제고도성장기(1955~1970), ‘잃어버린 20년’을 포함한 50년간 인구 증가율은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 기간 경제성장의 변수는 인구가 아니라 노동 생산성 향상, 수요 증대 등 사회적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나는 ‘사회의 어른’을 기다리지 않는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요즘, 경험도 가치관도 다른 어른의 조언이 청춘의 불안을 해소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이보다 필사적으로 관리하는 젊은 정신을 기다린다. 나의 경험이 너의 삶에 아무런 교훈이 될 수 없음을, 나의 말이 너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헤아리는 태도를 기다린다. 청년실업과 저출산 문제와 경제양극화의 해결은 ‘우리 모두 살기 위해 너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의 언어를 바꾸겠다’는 기득권의 변화에서 시작될 터다.
이윤주 지역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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