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고영한ㆍ박병대ㆍ차한성 전 대법관 등 최고위 전직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되면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도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의 중심축인 법원행정처와 대법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한 영장을 대부분 기각하면서 강제수사를 막았던 법원의 철벽 방어가 뚫렸다고 볼 수 있어 수사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사법농단의 실무책임자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소환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윗선인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출신의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와 진술만으로도 임 전 차장의 관여 정도를 충분히 밝혀 낸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 수뇌부들에 대한 범죄 혐의를 법원으로부터 상당 부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 사법처리가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간부는 “양 전 대법원장 영장 발부를 보고, 임종헌 차장뿐 아니라 전임 대법관들도 자신이 오롯이 총대를 매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 소환 조사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10월 중순 임 전 차장을 시작으로 전직 대법관들이 잇달아 검찰 청사로 불려 나올 것으로 전망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만 해도 10여 가지에 이르는 등 조사 분량이 방대해 수사 종료 시점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 소환 조사가 연말을 넘길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법원의 기류변화도 눈여겨볼 만 하다. 지난 6월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에 부딪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개입, ‘정운호 게이트’ 등 법원 관련 수사 기밀 유출, 판사 뒷조사(블랙리스트) 작성ㆍ관리, 법원행정처 비자금 조성 등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가 속속 드러났지만 법원 측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검찰은 이에 ‘저인망식’ 수사 전략으로 맞서 소환조사를 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과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심의관 출신 등 전ㆍ현직 법관만 50명이 넘는다. 검찰은 이들의 진술과 수집한 증거만으로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내면서 수사의 큰 고비를 넘기게 됐다.
물론 법원 측이 빗장을 열었지만 방탄장벽을 완전히 걷어낸 게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의) 주거 안정이 중요하고, (주거지에) 증거 자료가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퇴임 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차량에 대해서만 압수수색 영장을 내준 건 사실상 압수수색의 의미가 없을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영장이 발부된 점으로 미루어 보면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어느 정도 인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