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 부산국제영화제 첫 주말 뭘 보지?
지난 4년간의 정치적 외압을 딛고 정상화 원년을 선언한 부산국제영화제(부산영화제)가 새 돛을 달고 4일부터 23번째 항해에 나선다. 지난해 불참했던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주요 영화단체들도 올해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부산으로 향한다. 톱배우들은 관객과의 대화와 야외 무대인사에 참여해 축제의 열기를 더할 예정이다. 어느 해보다 다채로운 초청작들은 부산영화제의 부활을 뒷받침한다. 79개국 영화 323편이 영화의 전당과 센텀시티, 해운대 일대 극장에서 상영된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ㆍ폐막작과 주요 부문 수상작,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작품들도 다수 포함됐다. 부산영화제 첫 주말(5~7일)에 방문할 관객을 위해 볼만한 영화를 시간대별로 추천한다.
5일 금요일
‘화씨 11/9’(오전 11시ㆍ영화의 전당 하늘연 극장)는 ‘볼링 포 콜럼바인’(2002) ‘화씨 9/11’(2004) 등 내놓는 작품마다 논란을 몰고 다니는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의 신작이다. 미국은 어떻게 도널드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을 맡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트럼프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특유의 풍자로 그려낸다. “이 시대의 반항아 무어만이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박도신 프로그래머)
1980년대 리얼리즘의 선도자인 이장호 감독은 올해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이다. ‘바람 불어 좋은 날’(오후 1시30분ㆍ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은 이 감독에게 ‘사회비판적 리얼리즘 작가’라는 인식을 심어 준 작품으로,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서울 변두리 지역 세 청년의 소외된 삶을 그리며 고속성장의 그늘을 포착한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앳 워’(오후 5시ㆍCGV센텀시티)는 대기업 공장 폐쇄에 맞선 노조의 투쟁을 그린다. 기업과 노동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 노동자 공동체의 절망과 희망, 믿음과 배신을 내밀하게 관찰한 카메라가 인상적이다.
동화 ‘고 녀석 맛나겠다’ 시리즈 중 ‘계속 계속 함께야’를 원작으로 한중일이 공동 제작한 애니메이션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오후 8시ㆍ영화의 전당 야외극장)는 가족 관객에게 맞춤이다.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아 더 화제가 됐다. 육식을 하지 않는 티라노와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익룡의 우정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6일 토요일
‘쏘리 엔젤’(오전 10시ㆍCGV센텀시티)은 파리에 사는 작가 자크와 순수한 청년 아르튀르의 사랑을 그린 퀴어 영화다. 극의 배경인 1990년대 초 프랑스 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영화에도 스며 있다. “자크를 연기한 피에르 들라동샹과 떠오르는 신예 뱅상 라코스트의 호흡이 영화에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입힌다.”(남경희 프로그래머)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뷰티풀 데이즈’(오후 1시30분ㆍ영화의 전당 하늘연 극장)도 빠뜨리면 안 될 영화다. 어린 나이에 아들을 낳고 홀로 한국으로 건너 온 탈북 여성과 14년 전 자신을 떠난 엄마를 찾아 온 아들의 재회를 그린다. 탈북자의 고난을 전시하지 않고 공감으로 보듬는 시선이 사려 깊다.
낯선 나라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호텔 오로라’(오후 5시ㆍ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선 중앙아시아 영화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쇠락한 리조트에 모여든 중년 여성, TV 진행자, 중국인 비즈니스맨 등 독특한 캐릭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사건을 일으킨다. “중국자본의 유입, 여성 인권에 대한 무지, 그리고 부패와 빈곤의 문제 등 다양한 서브 텍스트들이 솜씨 있게 엮인 올해의 주목할 만한 영화”(김영우 프로그래머)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와 ‘늑대 아이’(2012)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신작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오후 8시ㆍ영화의 전당 하늘연 극장)를 선보인다. 갓 태어난 여동생에게 부모의 사랑을 빼앗겨 속상한 네 살배기 개구쟁이 쿤이 미래에서 온 동생 미라이와 시간여행을 떠난다.
7일 일요일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오전 10시ㆍ롯데시네마 센텀시티)은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칼로 사람을 찌르고 교도소에 갇힌 열두 살 소년 자인이 “이 끔찍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의 비참한 생활과 소년의 눈에 비친 난민의 현실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주인공 자인과 여동생 역 아역배우는 각각 거리에서 배달 일을 하던 열 살 소년과 껌을 팔던 시리아 난민 소녀다.
슬래셔 무비의 전설로 불리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1978)이 40년 뒤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의 손에서 동명 속편(오후 1시ㆍ소향씨어터 센텀시티)으로 부활했다. 전작에서 10대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이코패스 살인마 마이클이 정신병원을 탈출하자, 유일한 생존자인 로리는 마지막 대결을 준비한다. 전편에 출연한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와 닉 캐슬이 같은 역할로 출연한다.
예매 대란을 부른 ‘퍼스트맨’(오후 5시ㆍ영화의 전당 하늘연 극장)은 부산의 열기를 5도쯤 높였다. ‘위플래쉬’(2015)와 ‘라라랜드’(2017)로 사랑받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으로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됐다.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강인한 의지와 인간적 고뇌를 담았다.
‘선희와 슬기’(오후 8시30분ㆍ영화의 전당 중극장)는 아시아 신인감독을 발굴하는 뉴커런츠 초청작이다. 친구의 관심을 사기 위해 거짓말을 하던 여고생 선희는 자신의 잘못으로 친구 정미가 자살하자 도망치듯 서울로 떠나고, 자신을 모르는 시골 보육원에서 슬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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