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졌다. 그랜드피아노 25대가 콘서트홀 무대를 가득 채웠다. 피아노 한 대당 연주자는 2명씩, 50명의 피아니스트와 6명의 타악 주자가 호흡을 맞춘 피아노 오케스트라였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변칙적인 박자와 웅장한 음향으로 20세기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현악기와 관악기를 대신해 무대 위에 오른 피아노 연주자들은 오케스트라의 호흡에 뒤지지 않는 연주력을 보여줬다. 6개 파트로 나뉜 연주자들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수석 주자 역할을 하는, 각 파트 리더를 따라 연주를 해 나갔다. 건반악기인 피아노는 높은 음역대 관악기의 날카로운 음색부터 현악기의 몰아치는 활의 움직임까지 표현해냈다. 25대 피아노가 각자 내는 음에 정작 음향이 뭉개질 거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피아노 소리는 다른 악기의 음색으로 들릴 정도로 생동감 있었다.
이날 연주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원장 김대진) 개원 25주년을 맞아 마련된 기념 공연이었다. 한국인 최초 부조니 국제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문지영(23) 등 20대 초반 한예종 재학생 47명과 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손민수 이진상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봄의 제전’은 리듬이 강조되는 곡이라서 선곡됐다. 피아노는 현악기나 관악기처럼 한 음을 길게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피아노 오케스트라로 연주하기 적합하다는 판단이었다. 연주와 지휘를 맡은 김대진 음악원장은 이날 리허설 직후 “50명이 호흡을 맞추는 것보다 어려웠던 건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피아노로 내는 것이었다”며 “학생들에게 악기별 성격을 이해시키기 위해 원곡을 많이 들어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아노만큼 리듬을 잘 살리는 악기가 없기 때문에 피아노라서 더 효과적으로 들리는 부분도 있었다”며 웃었다.
편곡은 한예종 기악과를 졸업한 김상훈(31) 편곡자가 자신이 소속된 작ㆍ편곡회사 바싸르와 함께 맡았다. 5명의 편곡자가 머리를 맞대고 석 달에 걸쳐 피아노 25대를 위한 ‘봄의 제전’ 악보를 완성했다. 김 편곡자는 “피아노 두 대가 연주하는 식으로 축소 편곡된 경우는 있었지만, 원곡을 거의 그대로 살린 피아노 편곡은 처음일 것”이라며 “악보를 넘기고 난 뒤 쉬운 버전으로 다시 수정하고 있었는데, 재학생들이 아무 문제 없이 소화해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도된 적 없는 공연인 만큼 여러 진풍경이 펼쳐졌다. 예술의전당이 소장 중인 피아노 3대를 제외한 22대는 공연 하루 전날 한예종에서 옮겨 왔다. 운송 소요 시간만 3시간 넘게 걸렸다. 피아노 무게를 줄이기 위해 뚜껑은 모두 뺐다. 김상근 예술의전당 무대감독은 “2010년 그랜드피아노 4대와 업라이트 피아노 21대를 한꺼번에 연주한 적은 있지만 그랜드피아노 25대의 공연은 다신 없을 무대”라고 말했다. 김 무대감독과 김 음악원장 등은 긴 논의와 몇 번의 시도 끝에 부채꼴 모양으로 피아노를 배치했다.
공연 1부에서는 교수 3명이 바흐의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는 등 스승과 제자가 함께 음악원의 25주년을 기념했다. 공연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포털사이트 네이버TV 등 생중계를 통해 1만5,000여명이 관람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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