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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역사를 그릴 의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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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역사를 그릴 의무가 있어”

입력
2018.09.30 15:57
수정
2018.09.30 19: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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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작가가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이었던 아이들이 1학년 때 수련회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보고 그린 ‘학교 가자, 2반-세월’ 작품. 작가는 고 정차웅군(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우직한 모습과 따뜻한 눈매를 살리려 노력했다고 했다. 학고재 제공
이종구 작가가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이었던 아이들이 1학년 때 수련회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보고 그린 ‘학교 가자, 2반-세월’ 작품. 작가는 고 정차웅군(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우직한 모습과 따뜻한 눈매를 살리려 노력했다고 했다. 학고재 제공

단체 체육복을 맞춰 입었지만 각기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고등학생 350명이 열 폭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겼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아이들이 1학년 때 찍었던 1~10반 수련회 사진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긴 것이다. 얼굴표정부터 운동화 무늬까지 그림은 사진보다 더 생생하다.

황갈색의 농토와 농민, 소 등을 주로 그려온 농민화가 이종구(64)가 기존 작품과 확연히 달라진 최근작 33점으로 9년 만에 개인전 ‘광장_봄이 오다’ 전을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연다. 전시는 세월호 참사부터 광화문 촛불집회, 남북 정상회담에 이르는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을 연결한다.

이미 사진으로 찍힌 이미지를 굳이 화폭에 옮겨 담은 이유가 뭘까. 이 작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며 “작가로서 아이들을 그림으로라도 되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인천 작업실에서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진도 앞바다 임하도(林下島)의 폐교에서 3개월간 홀로 작업했다. 작품에 가족과 친구들이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새겨 넣었고, 아이들을 최대한 예쁘게 그리기 위해 전에 없던 파스텔톤 물감을 사용했다. 작가는 꽃이 아닌 그림으로 아이들에게 헌화(獻畵)를 했다고 말했다.

2016~2017년 총 23회의 광화문 촛불집회 중 10회 이상 참여했다는 작가가 당시 광화문의 역사적 흐름을 촛불이 물결치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한 ‘광장-16,894,280개의 촛불’. 학고재 제공
2016~2017년 총 23회의 광화문 촛불집회 중 10회 이상 참여했다는 작가가 당시 광화문의 역사적 흐름을 촛불이 물결치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한 ‘광장-16,894,280개의 촛불’. 학고재 제공

전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일궈낸 광화문 촛불집회로 이어진다. ‘광장-16,894,280개의 촛불’은 촛불집회 현장을 표현한 것으로 좌측 상단 박근혜 전 대통령 초상으로 시작해 수많은 촛불을 지나면서 깨진 박 전 대통령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집회에 사용됐던 스티커와 피켓을 콜라주 형식으로 붙이거나 배치했다. 작가가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강렬한 붉은색과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직접적인 문구 등이 색다르다. 작가는 “미학적으로 촌스럽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며 “미학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이 작품을 역사적 증거로서 정확히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두 정상의 악수와 미소를 그린 이종구의 ‘봄이 왔다 2’는 마치 9월20일 두 정상이 백두산 등반을 하고 천지를 산책할 것을 예견한 듯하다. 학고재 제공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두 정상의 악수와 미소를 그린 이종구의 ‘봄이 왔다 2’는 마치 9월20일 두 정상이 백두산 등반을 하고 천지를 산책할 것을 예견한 듯하다. 학고재 제공

전시는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의 인상적인 장면을 그린 ‘봄이 왔다 1~3’ 연작으로 마무리된다.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나고, 선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천지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있는 ‘봄이 왔다 2’는 마치 지난달 20일 두 정상이 백두산 천지를 방문하는 것을 예견한 듯하다. 작가는 “4월 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상상해서 그린 것인데, 기적처럼 상상이 현실이 됐다”고 했다.

파란색 바탕에 별처럼 반짝이는 효과를 준,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의 초상화, 제주 4ㆍ3 항쟁 당시 수백 명이 희생됐던 장소에 남아 있는 300년 된 팽나무 그림 등도 아픈 역사를 되새김질한다. 이 작가는 “시민으로서의 이종구와 작가로서의 이종구가 분리될 수 없듯이 잊지 않아야 할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해 그들에게 바치는 것으로서 작가의 의무를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21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사용됐던 각종 피켓 문구 등을 그린 이종구 작가는 “근래 몇 해 동안 우리는 일상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사건들 속에 살아왔다”며 “작품들은 이 시간에 대한 예술적 기록이자 증언이며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학고재 제공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사용됐던 각종 피켓 문구 등을 그린 이종구 작가는 “근래 몇 해 동안 우리는 일상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사건들 속에 살아왔다”며 “작품들은 이 시간에 대한 예술적 기록이자 증언이며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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