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주요 대회서 연패...철저하지 못한 사생활 관리가 원인이란 지적도
커제(21) 9단은 명실공히 중국 바둑계의 간판스타다. 지난 2015년 혜성처럼 등장, 3년 동안 7개의 세계대회 우승컵를 쓸어간 커제 9단은 당시 세계 1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대국 초반엔 날렵한 행마로 주도권을 가져오기 일쑤였고, 중반 이후 벌어진 반상(盤上) 전투에선 신들린 수읽기로 상대방을 제압했다. 전성기였던 2015년엔 덤이 주어지는 백돌로 대국에 나서 전무후무한 34연승을 올린 데 이어 이듬해엔 80% 이상의 승률 기록도 세웠다. 중국 대국에선 흑돌보다 나중에 두는 백돌을 쥔 기사에게 7.5집의 덤이 주어진다. 그랬던 커제 9단의 상승세가 최근 눈에 띄게 꺾이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징후는 지난해 중반부터 감지됐다. 29일 세계 바둑 랭킹 사이트인 고레이팅에 따르면 커제 9단은 지난해 5월을 기점으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특히 최근 벌어진 주요 대국에서 잇따라 패배, 커제 9단의 부진을 부추기고 있다. 급기야 이달 현재 커제 9단의 세계 랭킹은 박정환(25) 9단과 미위팅(22) 9단, 신진서(18) 9단에 이어 4위까지 떨어졌다. 일부에선 고레이팅의 세계 랭킹 순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지만 커제 9단의 슬럼프는 분명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커제 9단은 최근 ‘제1회 천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32강전에서 김지석(29) 9단에게 패한 것을 포함해 ‘제23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32강과 ‘2018 월드바둑챔피언십’ 4강에서 각각 탈락했다. 또한 ‘2018 CCTV 하세배 한중일 바둑 쟁패전’에선 박정환 9단에게 우승컵을 양보했고 ‘제19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도 중국팀의 최종 주자로 출전했지만 김지석 9단에게 패배, 우승 트로피를 한국팀에 내줬다. 이와 함께 올해 초 이벤트 기전으로 펼쳐졌던 ‘2018 해비치 이세돌 vs 커제 바둑대국’에서도 이세돌 9단에게 무릎을 꿇었다. 자국내 대표 프로바둑 기전인 중국 갑조리그의 올해 성적 또한 현재까지 12승5패로, 커제 9단의 이름값엔 못 미친다.
일각에선 커제 9단의 부진에 대해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통으로 잘 알려진 권효진(36) 6단은 “커제 9단은 다른 프로바둑 기사들에 비해 자기 관리에 허술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온라인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이 왕성한 것으로 유명한 커제 9단의 경우엔 중국내 각종 오프라인 이벤트 행사에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대한 개인적인 사생활을 자제하면서 바둑 연구에만 전념 중인 대부분의 프로바둑 기사들과는 확실하게 다르단 얘기다. 권효진 6단의 남편은 중국 프로바둑기사인 웨량(36) 6단이다.
인공지능(AI)의 등장 역시 커제 9단의 하락세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나온다. 현 국가대표 코치인 홍민표(34) 9단은 “예전엔 커제 9단과 경쟁하는 프로기사들 사이의 격차가 적지 않았지만 최근 나온 AI에 대한 연구가 거듭되면서 이 격차는 꽤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커제 9단 또한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I 덕분에 세계 바둑이 성장했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커제 9단의 전성기가 끝난 게 아니냐는 일부 전망에 대해선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제1회 천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32강전에서 커제 9단을 꺾은 김지석 9단은 “커제 9단도 사람인데, 일시적인 슬럼프가 있지 않겠느냐”며 “실전에서 커제 9단의 실력은 예전에 비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면서 여전히 커제 9단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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