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의 본고장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3년마다 열리는 현악기 제작 국제 대회에서 한국인이 처음으로 우승했다. 정가왕(28)씨가 주인공.
크레모나 오지(Oggi)를 비롯한 현지 언론에 따르면, 26일(현지 시각) 폐막한 제15회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정씨가 금메달을 받았다. 이번 대회 최연소 입상자인 정씨는 4관왕에 올랐다. 30세 미만 참가자 가운데 최고 제작자를 선정하는 ‘시모네 페르난도 사코니상’과 외국인 현악 제작자 중 최고 득점자에게 주는 상 등을 받았다.
단풍나무로 만든 정씨의 첼로는 악기의 오묘한 색감과 깊은 소리 등을 인정 받아 대회에 출품된 첼로 75대 가운데 최고로 꼽혔다. 장씨는 첼로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크레모나는 명품 현악기의 본거지다. 전설적인 악기 제작자인 아마티 가문과 과르니에리 가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가 크레모나에 뿌리를 뒀다. 스트라디바리 콩쿠르로도 불리는 크레모나 콩쿠르는 독일의 미텐발트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 폴란드의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 등과 함께 세계 최고 권위의 현악기 제작 경연 대회로 꼽힌다. 현악기 제작 장인과 연주자 10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까다로운 심사를 하기로 이름 났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우승자를 아예 내지 않는다. 올해는 4개 부문(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중에 첼로와 바이올린 부문에서만 우승자를 선정했다. 바이올린 부문에선 프랑스인 니콜라스 보넷이 금메달을 땄다.
정씨는 한국 대학 입학 후 한 학기 만에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2015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악기 제작 명장인 프란체스코 토토의 공방에 들어가 악기 제작을 배웠다. 3년 만에 처음 출전한 크레모나 콩쿠르에서 단번에 우승했다. 정씨의 첼로는 콩쿠르를 주최한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박물관(무제오 델 비올리노)에 2만4,000유로(약 3,100만원)에 매입됐다. 역대 우승 작품들과 함께 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 박물관에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악기도 소장돼 있다.
정씨는 “악기를 관상용으로 만드는 게 아닌 만큼 무엇보다 연주자들이 편하게 느끼고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스트라디바리처럼 세월이 지날수록 소리가 깊어지는 악기를 묵묵히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콩쿠르에선 한국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첼로 부문 은메달과 바이올린 부문 동메달도 한국인에게 돌아갔다. 2년 전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두 대를 출품해 1, 2위를 차지했던 박지환(36)씨가 메달 두 개를 땄다. 콩쿠르 결선 진출자 중 5명이 한국 제작자였다고 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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