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송 전남대 5ㆍ18연구소 교수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여고생을 비롯한 여성들을 끌고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믿고 싶지 않은 만행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하여, 그날의 악몽을 천형처럼 끌어안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국가마저도 애써 그 잔인한 폭력성을 외면해왔다. 그러나 진실은 감춰지지 않는 법. 피해자들은 그토록 피하고 꺼렸던 38년 전의 기억을 하나 둘씩 끄집어냈고, 마침내 국가폭력을 증언의 힘으로 딛고 다시 일어섰다.
28일 만난 김희송(50) 전남대 5ㆍ18연구소 교수가 5ㆍ18 당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두고 “5ㆍ18 생존자로서 예우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날 오후 5ㆍ18기념재단이 ‘5ㆍ18과 여성 성폭력’을 주제로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개최한 학술토론회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도 희생자가 아닌 5ㆍ18 생존자 개념으로 접근해야 국가폭력의 문제점과 실체를 밝힐 수 있다”고 강변했다.
김 교수는 “5ㆍ18에 대한 진상규명 과정에서 여성 인권침해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고,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여성을 상대로 한 계엄군의 무자비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음에도 희생자들이 침묵하며 통한의 세월을 지냈다는 사실은 성폭력 범죄가 갖는 이중적 질곡의 사회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전쟁 등 격변기엔 성욕이 왕성한 20대의 병사들이 전투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 때문에 닥치는 대로 성폭력과 폭행을 저지를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우리 모두 무시해 왔다”며 “실제 5ㆍ18 당시 군은 광주를 전쟁터로 여겼고, 그 때 발생한 인권유린 사건의 경우 격변기에 일어나는 군인들의 ‘비조직적 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 교수는 5ㆍ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출범을 앞둔 5ㆍ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그 진실을 밝혀줄 거라는 기대가 남다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5ㆍ18 당시 계엄군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증언과 제보가 잇따르면서 이 사안을 진상규명 범위에 명시해야 한다는 5ㆍ18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수개월째 잠만 자고 있는 탓이다. 김 교수가 “진상규명조사위에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교수는 ‘5ㆍ18 여성 성폭력’ 진상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진상규명조사위의 진상조사는 ‘군 자료 조사’와 ‘관계자 조사’를 병행해야 한다”며 “군 자료 조사는 군 자료 발굴과 검증작업으로 구분하여 진행하고, 관계자 조사는 군 관계자와 목격자 및 피해자로 구분하여 조사 대상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대면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성폭력 등 여성 인권유린 사건은 군 부대의 작전 또는 이동 간에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만큼 5ㆍ18 당시 군 부대별 주둔지역, 이동 경로, 작전 상황을 파악해 사건 발생 장소와 가해자를 특정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진상규명조사위는 5ㆍ18 당시 모진 고초를 겪은 이름 없는 여성들의 눈물과 노고를 기억하면서 국가폭력 생존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과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특히 진상규명 과정에서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관한 성찰과 여성주의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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