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가예산정보유출의혹을 받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7일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역 일부를추가로 공개하면서 한국당과 정부ㆍ여당이 제대로 맞붙었다.한국당은 국회 의원회관 압수수색까지 불러온 이번 사건의 정치쟁점화를 시도했고,기획재정부는 자료를 언론에 공개한 심 의원을 고발키로 했다.국정감사와 대정부 질문, 예산안 심사 등이 산적한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전운이 갈수록 짙어지는 모습이다.
◇심재철 대청와대 ‘업무추진비’ 공방
심 의원은 이날재정정보시스템을 통해 확보한 자료(2017년 5월~2018년 8월)를 바탕으로 청와대가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심야 시간대와 법정 공휴일, 주말에 2억4,594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쓴 내역이 있다고 폭로했다.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오후 11시 이후(비정상시간대)에 231건(4,132만원)을 사용했다. 법정공휴일 및 토ㆍ일요일에도 1,611건(2억461만원)을 썼다. 심 의원 측은 “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서는 비정상시간대와 주말 등에는 원칙적으로 업무추진비를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 연관성이 없는 주점 등에쓰인 업무추진비도 236건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업무추진비 내역에서 업종이 누락된 것도 3,033건(4억 1,469만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또 주말ㆍ공휴일 사용 백화점업 133건(1,566만원), 평일 사용 백화점업 625건(7,260만원), 오락관련업 10건(241만원) 등 용처불명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고 주장했다.심 의원은 “사적용도 및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게 사용된 업무추진비에 대해 정부는 대국민 사과를 비롯해 환수조치, 재발방지 등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하지만 청와대는 “최소한의 확인도 안 한 추측성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비서실은 업무 특성상 365일 24시간 일하고 통상의 근무시간대를 벗어난 업무추진이 불가피하다”며 “그런 경우도 예산집행지침에 따라 사유서 등 증빙자료를 제출받고 있고, 총무비서관실에서 부적절한 사용을 방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유흥ㆍ단란주점 등의 사용을 금하고 있고 전수조사결과 실제 결제된 사례도 없다”며 “불가피하게 일반식당이 영업을 종료하는 늦은 시간 간담회 개최시 상호가 주점으로 된 곳에서 쓰인 사례가 있으나 실제로 음식류를 파는 곳에서 부득이하게쓰였다”고 덧붙였다.
◇야 “국감 무력화” 여 “도둑이 몽둥이든 꼴”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두 차례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심 의원에 대한 검찰 강제수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직자들이 쓴 카드를 입법부가 볼 수 없게 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정부가 민주정부라 한다면, 의원이 그런 자료를 상시 감독ㆍ관리토록 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야당 탄압행위이자 입법부 무력화 조치”라고 강력 대처 방침을 외쳤다.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실을 찾아1시간가량 의원실 압수수색에 대해 항의했다.
한국당의 반발에 여당은 “적반하장”이라맞받아쳤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잘못을 저지른 도둑이 되레 몽둥이 든 꼴”이라며“심 의원실이 무단으로 빼돌린 자료를 되찾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을 어찌 야당 탄압이라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서영교 원내수석부대표는 “피감기관(기재부)과 심 의원이 맞고소한 상태에서 국정감사를 치를 순 없으니 심 의원은 기재위원을 즉각 사퇴하라”고 가세했다. 다만 민주당 안에선 기재부의 비인가 자료 관리 감독 부실 책임도 있다는 양비론도 적지 않다.
◇비인가 자료 유출 의혹 쟁점은
앞서 심 의원의 보좌진 3명을 검찰에 고발했던 기재부는 이날 심 의원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불법 자료 유출 및 공개가 반복돼 고발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피감기관이 감사를 하는 야당 의원마저 직접 고발하는 극히 이례적인 사건은 심 의원 보좌진이 9월 초 기재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의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에서 대통령비서실과 국무총리실 등 37개 기관 예산자료 47만여건을 내려 받은 게 발단이다. 일단 보좌진은 정부의 정식 발급 아이디로 시스템에 접속했으며,기재부도 접속 방식은 정상이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심 의원 측이 카드청구내역승인 항목 등 비인가 자료까지 대거 내려 받은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고, 기재부가 14일 밤 자료 반환 공문을 보냈으나 거절 당하자 급기야 고발전으로 번졌다.
김 차관은이번 사건의 주요 쟁점으로 ▦비정상적 접근방식 습득 경위 ▦비인가 정보습득 불법성의 사전 인지 여부 ▦불법 행위의 계획성ㆍ반복성 등을 꼽았다.반면 심 의원 측은“키워드 검색에서 결과가 없는 화면이 나와 되돌리기 키를 연속 입력했더니 해당 자료 항목이 나왔다”며 “비인가 표기나 주의ㆍ경고 표시도 없고 접근 제한도 안 걸려 있어서 주어진 아이디의 권한으로 보고 다운로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정정보원의 시스템 오류 방치였다는 얘기다.결국 자료 입수 과정에서 불법이라는 인식이 있었느냐가 이번 사건 성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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