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고위직이 다자(多者) 및 통상 외교 전문가 위주로 개편됐다. 대미와 북핵 외교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임성남(60) 제1차관이 물러나면서다. 강경화(63) 외교부 장관과 정의용(72)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다자 외교 전문가로 분류되는 데다 조윤제(66) 주미대사도 경제학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부 대미 라인 전반에 걸쳐 ‘북미통’이 소멸해가고 있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외교부 1차관으로 조현(61) 외교부 2차관, 2차관으로 이태호(58) 청와대 통상비서관, 국립외교원장으로 조세영(57) 동서대 국제학부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을 각각 임명했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56)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만 남기고 외교부 차관급 자리를 모두 바꾼 것이다.
조 1차관은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과 주(駐)오스트리아대사, 주인도대사 등을 지낸 다자 외교 전문가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멕시코 FTA 등 무역 협상에 참여하고, 탄도미사일확산방지행동규범(HCOC) 의장을 역임하는 등 통상ㆍ군축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쌓았다. 이 2차관은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과 FTA정책국장 등을 거친 통상 외교 분야의 대표 전문가로 꼽힌다. 조 원장은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낸 외교부 내 ‘일본통’이다. 2012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밀실 처리 파문에 대한 문책성 인사로 동북아국장직에서 물러나 이듬해 외교부를 떠났었다.
경질된 임 전 1차관은 외교부 고위직에 몇 남지 않은 대미ㆍ북핵 외교 전문가였다. 오랜 북미국 경험과 북핵외교기획단장ㆍ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내며 확보한 노하우를 동원, 대미ㆍ북핵 외교의 구심점이 돼 왔다는 평가다. 조병제(62) 전 국립외교원장도 외교부 한미안보협력대사와 북미국장을 지낸 대표적 북미 라인이다.
이번 인사는 현 정부에서 한미 등 굵직한 양자 외교와 북핵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청와대가 장악한 데 따른 결과라는 게 외교부 안팎의 분석이다. 북핵 문제 및 한미관계 조율의 주축이 청와대인 만큼 외교부는 다자ㆍ통상 외교를 통한 국익 극대화에 주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해석이다. 북핵 해결을 위한 대미 외교에 그간 외교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온 데 대한 청와대의 불만이 표출됐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이번 인사로 문재인 정부 외교 라인에서는 더 이상 북미통을 찾기 어려워졌다. 정 실장과 강 장관뿐 아니라 국가안보실의 이상철(61) 1차장과 남관표(61) 2차장 모두 대미 양자 관계와 북핵 외교를 다뤄본 경험이 없다. 조 대사도 주영국대사를 맡아보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주류 경제학자 출신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으로 정승일(53)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특허청장으로 박원주(54)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을 각각 발탁했다. 정 차관은 FTA정책관, 무역투자실장, 에너지자원실장 등 산업부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고, 박 청장은 산업부 기획조정실장과 산업정책실장,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비서관을 지낸 정통 관료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