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몫의 땅을 가로챈 삼촌과 법정다툼을 했지만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2년 전에 소송도 포기했어요. 마을 사람들에게 중재를 요청했지만 사람들은 하나 같이 ‘여자들은 상속권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이집트 남부 농촌지역의 여성 옴 아메드(37)는 아버지가 남긴 땅 중 0.5에이커(약 612평ㆍ약 2,023㎡)에 대한 상속권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한 뙈기 땅조차 차지할 수 없었다. 여성들의 상속권리를 제약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아랍 지역에도 서서히 여권신장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상속권만큼은 예외다. 아메드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동네 성직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도 마을사람들 시선이 두려워 모른 척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8월 튀니지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이 아랍국가 중 처음으로 남녀 상속평등법안 제정 추진방침을 밝히면서 아랍지역 여성들의 상속권 투쟁이 조명을 받았지만 해당 법안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면서, 이 지역 여성들의 상속평등권 쟁취 투쟁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아랍의 봄 이후 유일하게 민주화가 진전되고 정국도 안정기에 접어든 튀니지의 제헌의회는 2014년 양성평등을 명문화한 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에 따라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상속받도록 한 상속 관련법은 바뀌지 않았다. 이에 에셉시 대통령은 남녀 동등상속이 원칙이되 상속대상자가 원하면 이슬람 율법을 따르도록 한 관련법 개정 계획을내놨지만, 법안은 보수적 유권자들을 의식하는 정치권의 외면을 받고 있다. 연정 파트너로 원내 제1당인 에나하당은 이 제안을 거부했고, 에셉시 대통령이 속한 세속주의 성향 튀니지소명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도 법 개정에 미온적이다. 여론조사(미 국제공화연구소) 결과 튀니지인 전체의 63%, 여성 중 52%도 법 개정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앞둔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튀니지 이외의 아랍국가들에서도 남녀평등상속권을 부여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좀처럼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는 올해 초 타인의 상속권을 빼앗는 범죄의 형량을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남성들이 강제로 여성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없도록 당국에 감독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남성우위의 보수적 이슬람 문화를 혁파하기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집트의 여성운동단체인 벤트 알 리프 여성협회 대표 지나트 모하메드 알리는 FT에 “여성이 상속권 소송을 한다는 건 이슬람 사회에서 자해 행위나 다름 없다” 면서 “소송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 여성은 지역사회에서 철저히 매장당한다”고 말했다. 무슬림 여성들의 대지상속권에 대한 유엔해비타트 보고서를 쓴 라픽 코우리는 “아랍 지역에서 부동산을 소유한 여성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여성에 대한 상속권 허용은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남성들의 보수적 생각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