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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는 왜 그토록 자유주의를 혐오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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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는 왜 그토록 자유주의를 혐오했을까

입력
2018.09.28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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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8일 열린 촛불 1주년 선포 기자회견. 2주년이 다가오는 지금, 촛불집회의 성과는 무엇이며 2, 3주년 이어간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0월 28일 열린 촛불 1주년 선포 기자회견. 2주년이 다가오는 지금, 촛불집회의 성과는 무엇이며 2, 3주년 이어간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때때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지만 종종 우스꽝스러우며, 종합해보면 반복이 많고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벤야민 연구자들은 이 글들을 파스칼의 ‘팡세’에나 걸맞을 엄숙함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다 쓰지도 않았고, 다시 쓸 수도 없는 저작을 복원하려는 영웅과 같은 노력을 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책을 지나치게 장엄하게 해석하려 든 것 아니냐는, 조롱에 가까운 신랄한 평이다. 짐작하다시피 평가 대상은 오늘날까지 숱한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다.

“심사위원들은 이 책이 아무나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 전통적인 방식의 역사서가 아니라 ‘신비’로우며 ‘비유’로 가득 찬 저작이라고 논평했다. 이 책은 그가 쓴 다른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고대의 원천들 중에서도 아주 제한된 부분에 근거하고 있지만 (중략) 프랑스 독자들은 역사와 철학의 경계가 정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은 덕분에 이 책이 담고 있는 역사 외적 메시지를 읽어냈다.”

이 또한 짐작할 사람은 짐작할 만한 책에 대한 평가. 프랑스철학 혹은 구조주의의 간판스타로 ’고고학’이니 ‘계보학’이니 하는 말을 즐겨 썼지만, 정작 역사가인지 철학자인지 에세이스트인지 헷갈린다는 수근거림을 끊임없이 들었던 미셸 푸코의 초기 저작 ‘광기의 역사’에 대한 평이다.

문예이론에 관한 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발터 벤야민. 마크 릴라는 그 또한 신학적 모호함에 빠져 있었다고 맹비판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예이론에 관한 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발터 벤야민. 마크 릴라는 그 또한 신학적 모호함에 빠져 있었다고 맹비판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구조주의의 간판스타 미셸 푸코. 그에 대한 마크 릴라의 평도 냉정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구조주의의 간판스타 미셸 푸코. 그에 대한 마크 릴라의 평도 냉정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정치철학자 마크 릴라가 저술한 책의 주제는 ‘지혜 애호가’라던 철학자가 왜 ‘전제권력 애호가’가 되는가다. 한마디로 철학자들이 ‘지혜’ 말고 ‘전제권력’과 바람 핀 기록인데, ‘분별없는 열정’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그 바람은 ‘어쩌다 바람’이 아니라 ‘예고된 바람’이라는 게 저자 주장의 핵심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은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눈 먼 사랑의 열정이 결국 전제권력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 것이라는 경고다. 책의 비판 대상이 나치 지지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와 칼 슈미트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는 좌파임을 내세웠던 벤야민과 푸코, 자크 데리다에까지 이른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그래서 핵심은 오히려 슈미트다.

알려졌다시피 슈미트는 히틀러의 ‘황제 법학자’라 불린 나치 협력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슈미트는 지워졌지만, 뜻밖에도 그를 열성적으로 되살려낸 건 좌파였다. 적대적인 피아 구분을 정치적인 것이라 부르고 외부의 절대적 힘을 상정한 결단주의 철학을 강조한 것은, 갈수록 출구가 없어 보이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패권 체제를 끝장 내버리고자 하는, 뭘 해도 급진적 기획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너절한 현실적 타협안 따위 밖에 못 내놓는 이 정치판을 뒤집어버리고자 하는, 바꾼다고 해봐야 어차피 그 놈이 다 그 놈인 이 세상을 박살내고픈 이들에게 멋지게 보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신좌파 시절부터 이런 관심이 일기 시작했고, 실제 유럽 곳곳의 소규모 극좌주의 실험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으며, 이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도 최근 ‘땅과 바다’(꾸리에), ‘정치적인 것의 개념’(살림), ‘정치신학’(그린비), ‘합법성과 정당성’(길)은 물론, ‘독일 헌법학의 원천’(산지니)같은 두꺼운 책까지 ‘좌파적 시각으로 슈미트를 다시 읽는다’는 명분 아래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나치 협력자였으나 아이러니하게 좌파 쪽에서 더 환영받는 법학자 칼 슈미트. 마크 릴라는 그 지점에서 반론을 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치 협력자였으나 아이러니하게 좌파 쪽에서 더 환영받는 법학자 칼 슈미트. 마크 릴라는 그 지점에서 반론을 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이런 움직임이 못마땅하다. 좌파는 슈미트의 자유주의 혐오만 딱 따와서 쓰지만, 슈미트가 왜 그토록 자유주의를 혐오했는가에 무신경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오늘날 슈미트를 연구하고 치켜 세우는 사람들에게는 진지성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 혐오에 대한 가장 흔한 설명은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상이다. 저자는 그게 아니라 슈미트 자체가 기이하게 종교적이었다고 본다. 실제 슈미트는 스스로를 ‘카테콘(Katechon)’, 곧 ‘예수 재림 이전 반기독교 세력을 물리치는 세력’이라 불렀다. 자유주의의 혼란상에 염증만 느낀 게 아니라, 이 세속적 자유주의 세상을 끝장내야 한다는 신학적 열정에 휩싸였다는 얘기다.

저자가 문제 삼는 건 이 지점이다. 크던 작던 당대에 현실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을 면밀하게 짚어내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 이는 현실정치를 종말론과 메시아주의로 몰아넣는다. 저자는 슈미트에게서 발견되는 이 악성종양을 하이데거에서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찾아낸다.

분별없는 열정

마크 릴라 지음ㆍ서유경 옮김

필로소픽 발행ㆍ264쪽ㆍ1만6,500원

이런 논의가 다 무슨 소용일까. 촛불집회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주 등장하는 논란거리 ‘정치적 효능감’ 문제와 직결된다. 현행 권력 구도 내에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에 대해 얼마나 박하게 또는 후하게 평가할 것인가. 동시에 트위터ㆍ페이스북 등을 여는 순간 끝없이 만날 수 있는 선명하고 멋진 정치적 선언들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각각의 철학자들에 대해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혹평을 이어간다. 중요한 건 비판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비판함으로써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불편한 대목이 몇몇 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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