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외교ㆍ군사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절반에 관세폭탄을 퍼붓는가 하면 중국 인민해방군까지 독자제재 대상에 포함시켰고, 중국은 연일 보복을 다짐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과거 미국과 소련 간 냉전에 버금가는 신냉전 체제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이 2,000억달러(약 223조3,000억원)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면서 한층 격화됐다. 타협이 이뤄지 않을 경우 미국은 내년 1월부터는 해당 세율을 25%로 인상할 방침이다.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500억달러(약 55조8,250억원) 규모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했던 미국은 이번 조치로 지난해 대중 수입액(5,055억달러, 약 564조3,908억원)의 절반에 관세를 부과한 셈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00억달러 관세 부과 개시와 관련해 “중국이 반격할 경우 나머지 절반을 포함해 중국산 수입품 전체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번 관세 부과 품목에 가구ㆍ식품ㆍ의류ㆍ가전 등 소비재가 대거 포함돼 있어 미국 소비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는 엄포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당초 예고했던 600억달러(약 66조9,900억원) 규모 보복관세 부과 시점을 다소 늦춘 채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며 양국 협력을 강조하는 ‘백서’ 발간으로 대응했다. 중국은 3만6,000자 분량의 방대한 백서에서 “중미 양국에게 유일한 선택은 협력”이라며 “담판의 문은 열려 있지만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협상은 없다”고 반발했다.
중국 내에선 미국의 무역 압박이 통상문제를 넘어 중국의 부상을 억지하려는 전략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중간재ㆍ부품의 대미 수출 제한으로 미국 제조업계의 공급사슬에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도 나온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환율전쟁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내달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만약 중국이 외환보유고를 풀어 대응할 경우 전 세계가 환율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은 최근 외교ㆍ군사분야에서도 정면충돌하고 있다. 중국이 냉전 이후 최대 규모로 치러진 러시아의 ‘동방-2018’ 군사훈련에 합류하자 미국은 러시아 산 수호이(Su)-35 전투기와 S-400 방공미사일시스템 구매를 이유로 중국 인민해방군 무기 구매 부서와 책임자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중국이 미중 합동참모부 간 대화를 연기하자 미국도 3억3,000만달러(약 3,684억4,500만원) 상당의 F-16 전투기를 비롯한 군용기 예비부품의 대만 판매를 승인함으로써 반격을 가했다.
미중 양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두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중국을 북미 간 협상의 걸림돌로 지적했고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사실상 남ㆍ북ㆍ미 3국 간 종전선언을 인정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북중관계 복원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확대일로인 미중 무역분쟁과 관련 지난 21일 ‘영원한 무역분쟁에 대비하라’는 사설을 통해 “미중 무역분쟁이 당장은 작아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무역뿐 아니라 군사와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 관계를 훼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중 간 무역전쟁은 이미 어느 쪽이든 치명상을 입어야 끝나는 상황으로까지 확산되고 있고 여기에 외교ㆍ군사분야 충돌까지 더해지고 있다”면서 “과거 미국과 소련 간 극단적인 냉전ㆍ대결구도 못잖은 신냉전 구도가 형성될 경우 어렵사리 점점을 찾아가고 있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