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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핵시설 폐기… 북한 발상의 전환, 미국에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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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핵시설 폐기… 북한 발상의 전환, 미국에 먹혔다

입력
2018.09.26 20:00
수정
2018.09.26 20:3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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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멈췄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다시 굴러갈 조짐이다. 북한의 핵 능력 전부가 신고를 통해 완전히 파악된 뒤에야 비핵화ㆍ체제안전 보장 교환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후퇴하는 듯한 미측 변화가 보이면서다. 전통적 비핵화 과정의 맨 마지막에나 올 법한 핵심 핵 역량 포기를 초입에 실천해 신뢰부터 확보하겠다는 북한의 승부수가 먹히는 듯한 분위기다.

2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절충은 북미 간 물밑 접촉을 통해서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3일 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특정한 시설과 무기 시스템에 대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폐기 대상이 논의되고 있다는 뜻이다.

애초 협상 교착의 최대 요인은 미국의 포괄적 ‘선(先) 핵 신고’ 요구였다. 7월 초 방북 당시 폼페이오 장관이 종전(終戰)선언 조건으로 북한에 제시한 초기 비핵화 조치가 무기ㆍ물질ㆍ시설ㆍ프로그램을 망라한 핵 능력 목록의 제출이었다는 게 소식통들 전언이다. 발끈한 북한은 이후 종전선언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적대행위 철회 조치가 병행돼야 자신들도 움직일 명분이 생긴다고 버텼다.

초기 핵 신고는 북한한테 모험이라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도 전에 상대방한테 제 밑천을 고스란히 꺼내 보여주는 짓인 데다 불신 속에 신고해봐야 정보 불일치가 생길 게 뻔해 과거처럼 협상만 틀어지고 말지 모른다는 게 북한의 불안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용의 표명은 초기 핵 신고 회피를 위한 북한의 고육책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북측의 제안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26일 “언젠가 신고가 이뤄지기는 해야겠지만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된 만큼 핵 개발 단계에 적용하던 ‘신고-검증-폐기’ 순서에 집착할 수는 없게 됐다”며 “시간 단축과 신뢰 구축에 효과적이고, 답보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기부터 시도해보는 발상의 전환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는 북미가 ‘신고 및 사찰’ 과정을 건너뛸 가능성도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1일 KBS 인터뷰에서 “전통적 비핵화 과정과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며 “사찰 등 검증 프로세스가 필요하지만 반드시 그게 초반에 나와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번에는 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추가 대미 유인책은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일부의 상징적 폐기일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핵 신고에서 물러선 미국에게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추가 제공할 인센티브로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행정부에게 도움이 될 ICBM 해체가 고려될 수 있다”며 “IPNDV(핵군축검증국제파트너십) 같은 숙련된 그룹이 참여하면 해외 반출 없이 북한 내 폐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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