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이 악용해 온 ISDS
중복소송 못하게 협정문에 반영
한국산 픽업트럭 관세철폐 기한
美, 2041년까지 20년 연장 ‘실리’
文 대통령 “한국 車 관세 면제” 요청
美 ‘232조’ 예외국 지정할지 주목
한미 양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에 최종 서명했다. 두 나라 정상이 FTA 개정으로 상호간 통상 갈등을 상당부분 해소했다는 데 뜻을 같이하면서, 한국을 겨냥한 미국의 수입산 자동차 관세부과 압박의 칼날도 다소 무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청와대 등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 FTA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앞서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미 FTA 개정안에 최종 서명했고, 두 정상이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이를 환영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한미 FTA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양국 기업이 안정된 여건에서 활동하게 됐다”고 평가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협정으로 수십 년간 불공정한 무역협정 시대를 끝냈다”고 주장했다.
이번 FTA 개정안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남소(濫訴) 방지 ▦픽업트럭 관세철폐 기한 20년 추가연장 ▦덤핑ㆍ상계관세 계산방식 개선 등이 골자다. 우리로선 한미 FTA의 독소조항으로 여겨지던 ISDS의 남용을 막는 성과를 거뒀다. ISDS는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 당했을 때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모호한 규정 탓에 거액의 국가 배상금을 노린 외국계 기업들의 단골 무기로 악용돼 왔다.
개정안에선 다른 투자협정(BIT)을 통해 제소한 사안은 한미 FTA로 또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했고, ISDS를 청구할 때 모든 청구 원인에 대한 입증 책임을 투자자가 지기로 했다. 김현종 본부장은 “투자자가 ISDS 제도를 악용하는 걸 제한하고 정부의 정책 권한을 보호하는 요소를 반영했다”며 “정부 정책이 환경보호 등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을 위한 것인지도 ISDS 제기 전 고려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자동차 분야에서 실리를 챙겼다. 한국산 픽업트럭의 대미 수출관세(25%) 철폐 시기를 기존(2021년)보다 20년 늘어난 2041년으로 연장했다. 국내에선 세단이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가 인기지만 미국 시장에선 픽업트럭이 대세다. 때문에 현대ㆍ기아차는 새로운 먹거리로 미국 픽업트럭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다. 미국 정부는 이번 개정안으로 자국 시장 보호 장벽을 크게 높였다.
이밖에 미국산 자동차는 한국 안전기준에 미달해도 미국 기준만 맞추면 업체별로 기존(2만5,000대) 보다 2배 늘어난 5만대까지 한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우리 규제 당국의 사후 관리와 긴급조치 권한은 강화했다.
개정안에는 ‘덤핑ㆍ상계관세 계산방식 공개’도 담겼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이후 한국 등 외국산 물품에 덤핑ㆍ상계관세 부과를 남발해 왔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박사는 “미 상무부는 ‘불리한 가용정보(AFA)’ 적용의 명확한 기준도 밝히지 않은 채 덤핑 관세를 제재에 가까운 수준으로 높여왔다”며 “이번 개정안으로 미국이 덤핑ㆍ상계관세를 이전처럼 자의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0월 초 국회에 FTA 개정안 비준동의안을 제출, 내년 1월1일까진 개정안이 발효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 차원의 FTA 개정안 서명으로 양국간 통상 쟁점이 상당부분 해소되면서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수입산 자동차 관세부과에서 우리나라가 예외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산 수출 차량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 일본, 독일, 멕시코 등 4개국은 대미 무역 흑자가 급증했지만 한국은 2017년 흑자 폭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말을 고려해 검토 해보라”고 화답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약 84만5,000대로, 글로벌 수출량(253만대) 중 3분의 1를 차지한다.
다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는 경계감도 높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철강 관세도 한미FTA가 있다고 우리를 빼주지 않았다”며 “한미FTA 개정과 무관하게 미국이 자동차에 232조를 적용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 전후로 예정된 발표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자동차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 한미 FTA 개정안이 국회 비준동의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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