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 부임한 한국문화원장이 현지 직원과 공용차량을 가족여행 등 사적인 일에 동원하고 고압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하지만 현지조사를 통해 이를 확인한 문화체육관광부나 조사 사실을 통보 받은 외교통상부 등 담당부처에서 1년 가깝게 제대로 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25일 문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 파견된 한국문화원장 A씨는 부임 직후 현지 직원들에게 근무 시간 중 가족여행 예약을 시키고, 본인을 대신해 자녀가 다닐 학교를 직접 섭외해 달라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공용차량을 역시 가족휴가와 본인의 골프장 이용 시 동원한 사실도 일부 확인됐다. 이에 대해 A씨는 “부임 초기 현지 사정에 익숙지 않아 ‘부탁’ 차원이었다”며 “관련 의혹이 제기된 뒤로는 전혀 유사한 일이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또 현지인 직원 중 애초 한국어 능력을 조건으로 채용하지 않은 직원들에게까지 “한국어를 배우는 게 힘들면 나가라”는 식으로 한국어 습득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강요하면서 “점수가 안 나오면 이후에 (채용 연장 등에) 고려하겠다”는 등 불이익을 주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이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강요했으나 이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또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 현지인들에게 술을 권하거나, K-POP 관련 행사에서 “무슬림들이 K-POP만 보면 환장한다”고 말했다는 현지 직원들의 진술도 나왔으나, 관련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문제는 지난해 8월 문체부 해외문화홍보원이 실시한 재외문화원 행정직원 대상 갑질실태조사를 통해 접수됐다. 이에 문체부 감사관실은 석달 후인 11월 현지조사를 통해 일부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A씨의 행태가 국가공무원법 제63조나 재외공무원 복무규정 제5조에 위반되는 징계사유에 해당된다고 보고 올해 2월 외교통상부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A씨는 징계 등 별다른 조치 없이 계속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A씨의 행위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문체부가 적발하고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자체가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라도 이에 대한 적절한 후속 조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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