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되는 게 별로 없네요.”
우리나라 대표 엘리트 공무원의 산실인 기획재정부의 한 중견 공무원이 한 말이다. 기재부는 산하 공공기관인 재정정보원에서 미인가 행정 정보가 유출되면서 중요 정보 관리 부실 및 관리 책임 비판을 받고 궁지에 몰려있다. 여기에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방문단 명단에 빠진 것도 위상 하락의 방증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고용둔화, 경기 하강 우려 등 경제 문제로 국민들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로 구설까지 올라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앞서 17일 기재부와 재정정보원은 이달 초부터 재정정보원이 운영 중인 재정분석시스템(OLAP)을 통해 대통령 비서실, 국무총리실, 기재부,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30여개 정부기관의 수십 만건에 이르는 행정정보가 무단으로 열람되고 내려받기(다운로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불법 열람과 다운로드를 한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실 보좌진들을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심 의원은 이튿날 시연을 통해 ‘정상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고 반박하며 김 부총리와 김재훈 재정정보원장에 대해 무고 등으로 맞고소했다. 재정정보원은 “의원실이 언급한 접근경로도 추가 여러 단계가 더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권한을 넘어선 자료임과 비정상적 경로임을 인지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며 “수사당국이 정확한 침입경로와 방법을 밝혀 불법성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판단해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검찰이 21일 재정정보원과 심재철 의원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유출 과정의 불법성 여부는 수사로 드러날 전망이다.
정작 기재부 안팎에서는 중요한 재정 정보에 대한 관리 소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 비서실, 국가정보원, 외교부 등의 예산 및 사용 내역 등 중요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된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정보를 관리하는 조직이라면 해킹 등 어떤 경로로도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당연한 업무인데 재정정보원이 유출 책임을 ‘비정상적 경로’로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비정상적 경로를 막지 못한 책임도 가볍지 않은데, 이에 대해 재정정보원은 단순히 “이번 일을 계기로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2014년 1월 국민ㆍ농협ㆍ롯데 등 카드3사에서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용역 직원에 유출됐을 때와 사뭇 다르다는 비판이 적잖다. 당시 정부는 카드3사 대표를 모두 사임시키고 재발 시에도 대표이사 직무정지 및 해임, 기관 영업정지까지 가능토록 법령을 정비했다. 당시 정보 유출은 정보보안업체 직원의 계획된 범행이었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정보는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정부가 정작 본인들의 정보 관리 부실은 축소시키려는 모습이 역력하다”며 “사기업이었다면 대국민 사과는 물론 임직원 해임까지 될 사안 아니었겠느냐”고 꼬집었다.
18~20일 개최된 평양정상회담에서 김 부총리가 제외된 것도 뒷말이 무성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경제계 특별수행원에 포함됐음에도 국가 경제를 총괄하는 김 부총리가 명단에서 빠지면서 예의 기재부 ‘패싱’(제외)론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등 주요 경제 관계 장관들도 참석한 마당에 ‘남북 경협’이라는 중요한 문제에서 김 부총리가 빠진 것은 의아하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지금은 주택 가격 안정이나 민생 등 현안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며 김 부총리 제외를 설명했지만, 각종 민생 현안을 김 부총리가 3일 동안 집중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적잖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경협 문제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김 부총리가 제외된 것은 망신”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앞서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과 비교가 되기도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평양정상회담에는 이헌재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 참석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방북 때는 권오규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공식 수행원으로 방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 경제 사령탑인 리용남 내각부총리가 재계 관계자들에게 남북 경제협력을 이야기했는데, 그의 대화 상대였어야 할 사람은 김 부총리”라며 “기재부로서는 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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