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범(22ㆍ대전)의 전역식이 열린 20일 충남 아산시 경찰대학 내 무궁화체육관 식당. 동료들에게 고별 인사를 전하려던 황인범은 몇 마디 채 잇지 못한 채 왈칵 눈물을 쏟아버렸다. 이유를 묻자 “동료들한테 미안해서”라며 또 눈시울을 붉혔다. 내년 8월 12일로 예정됐던 전역일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덕에 이날로 당겨졌지만, 최근 아산무궁화축구단이 올해부터 선수를 새로 뽑지 않기로 결정했단 소식에 선수단 분위기가 뒤숭숭한 탓이다.
전역식 직후 만난 ‘민간인’ 황인범은 조기전역 날이자 자신의 생일이기도 했던 이날 흘린 그의 눈물의 의미를 담담이 털어놨다. 그는 “병역의무를 털어낸 후련함도 있지만, 최근 경찰이 체육단 축구선수 선발을 당장 올해부터 않겠다고 결정한 사실이 알려진 상황에서 홀로 팀을 떠나게 데 대한 미안함이 더 컸다”며 “의경 제도가 2023년 폐지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진행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내년 리그참가가 어렵다는 사실에 선수들은 막막해하고 있다”면서 “선수들 입장을 조금 더 헤아린 조치가 다시 내려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아산의 ‘막둥이’였던 황인범에게 동료들은 큰 자극제였다. K리그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축구 실력을 다시 돌아보고, 스스로를 더 채찍질 할 수 있는 계기였다는 게 그의 얘기다. “병역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을 뛴 다음 임대를 생각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도 일리 있는 얘기였지만, 장담할 수 없는 금메달에 기대를 걸기보다 차분히 자신과 부모님이 그린 축구인생을 걷다 보면 금메달 기회도 자연히 따라오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21세 때 입대를 택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단언했다.
이제 그는 친정 팀 대전시티즌 품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12월 입대 후 9개월 만의 재회다. 대전은 K리그2(2부 리그) 시즌 초반 하위권에서 맴돌다 최근 8경기 연속 무패 행진으로 어느덧 4위까지 올라서 승격까지 내다보고 있다. 얄궂게도 황인범의 출전이 예상되는 첫 대전 홈경기(10월 6일) 상대는 아산이다. “내 자리에서 열심히 뛰는 게 두 팀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인 것 같다”며 에둘러 ‘총력전’을 선언한 그는 대전의 ‘가을 축구’를 기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올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같은 지역 프로야구팀 한화이글스 ‘가을 야구’만큼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겠단 얘기다. “스포츠채널을 틀면 프로야구 경기만 나오는 게 원망스러웠지만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스포츠채널 몇 곳에선 프로야구 대신 K리그를 중계하고 싶어지도록 저부터 열심히 뛰겠다.”
그가 가슴에 담아둔 ‘대전 승격’ 이후의 꿈은 크게 두 가지, ‘유럽 진출’과 ‘대전에서의 은퇴’다. 입대 전부터 유럽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돼 왔던 황인범은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국가대표 발탁 등으로 주가가 한껏 높아진 상태다. 그는 ”절친인 황희찬(22ㆍ함부르크SV)이 뛰는 독일 무대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선수생활의 마무리는 꼭 대전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보다 ‘대전 레전드’ 김은중(39) 23세 이하 국가대표팀 코치의 길을 걷고 싶단다. “4년 전 ‘은중쌤(김은중 코치를 일컫는 말)’ 은퇴식을 직접 보고 축구선수로서의 진짜 성공이 뭔 지 알게 됐다. (김은중처럼)제 등 번호(데뷔 당시 6번)도 영구결번으로 남기고, 가능하면 더 훌륭한 선수로 기억되기 위해 매 순간 열심히 뛰겠다.”
아산=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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