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적을 만난 맥나마라 "최고지도자 간 대화는 계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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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적을 만난 맥나마라 "최고지도자 간 대화는 계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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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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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마침내 만난 베트남전쟁의 두 주역 맥나마라(왼쪽)와 보응우옌잡. 의례적 인사말이 오가고 나자 맥나마라는 ‘1964년 8월 4일 공격’에 대해 30년간 품고 있던 의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더박스 제공

1995년 11월 9일 베트남 하노이. 로버트 맥나마라(1916~2009) 전 미국 국방장관, 그러니까 1961~68년 최장기 국방장관으로 일하면서 베트남전 확대를 결정했고 군부가 작성해 올린 폭격계획을 일일이 검토, 승인함으로써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반전시위대로부터 ‘도살자’ ‘학살자’라 불린 인물이, 맞은편에 앉은 보응우옌잡(1911~2013) 장군, 그러니까 1954년 디엔비앤푸 전투 승리로 프랑스를 내쫓았으며 1968년 구정 대공세로 충격적인 패배를 미국 측에 각인시킨 베트남의 전쟁영웅과 마주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에게는 오늘 이 순간까지 계속 품어온 의문이 있습니다. 1964년 8월 2일 미국의 구축함 매독스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이 있었습니다. 내가 의문이라고 하는 것은 그에 이어 8월 4일에 행해졌다고 하는 두 번째 공격입니다. 과연 그때 베트남은 공격했습니까, 하지 않았습니까.”

보응우옌잡 장군은 곧바로 대답했다. “8월 2일 매독스가 베트남 영해에 침입하여 북베트남군이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4일 공격은 완전히 날조된 것입니다. 우리는 8월 4일에 공격 따윈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미국의 대대적 북폭 계기가 됐던, 베트남전이라면 모두가 다 떠올리는 ‘통킹만 사건’을 두고 당시 미국, 베트남 최고 군사지도자들이 31년 만에 주고받은 대화다. ‘적과의 대화’는 이렇게 맥나마라의 제안으로 성사된 ‘1997년 하노이 대화’를 일본인 기자가 써놓은 생생한 기록이다.

맥나마라에게 베트남전은 영원한 물음표였다. 맥나마라는 합리적 조직관리를 중시하는 유능한 경영학 교수로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산업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고, 그 덕에 포드자동차 CEO를 역임했을 뿐 아니라 이런 경력 덕에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비대해지고 호전적인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인물로 국방장관에 발탁됐고, 베트남전 이후엔 국제부흥개발은행 총재를 지내면서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을 뒷받침한 인물이다. 합리적 관리의 상징인 내가 왜 베트남전의 합리적 관리에는 실패했는가, 맥나마라 평생의 화두였다.

1995년 맥나마라는 ‘회고록 – 베트남의 비극과 교훈’을 내놓고 결국 베트남전이 미국의 과오였음을 인정했다. 미국 내에서는 ‘확전의 주범이 이제 와서 양심적인 척하냐’ ‘그러면 참전한 우리는 바보란 말인가’ 등 반응이 엇갈렸지만, 베트남은 이를 ‘미국의 사과’로 받아들였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맥나마라는 대화를 제안했다. 난 왜 실패했는가, 30여년을 붙들어왔던 화두를 풀어야 했다. 곧 보응우옌잡을 만났고, 준비를 거쳐 2년 뒤인 1997년 6월 20일부터 ‘하노이 대화’가 열렸다.

미국에선 맥나마라를 비롯, 당시 국무부에 근무하면서 베트남 측과 여러 차례에 걸친 평화협상을 극비리에 진행했던 체스터 쿠퍼 등 13명이 나섰다. 베트남에선 고령으로 몸이 불편한 보응우옌잡이 빠지는 대신, 외무장ㆍ차관 등을 역임하면서 대미 협상을 관장한 외교관 응우옌꼬탁과 쩐꽝꼬, 그리고 30년간 정글을 누비고 다니면서 여러 차례 미군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던 게릴라전의 1인자 당부히엡 등 13명이 나선다.

3박 4일간의 대화는 예상대로 거칠었다. 극한의 대립 끝에 수백만이 죽은 전쟁을 치렀으니 고울 리 없다. 먼저 도미노 이론. 미국은 베트남이 소련, 중국의 손과 발이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베트남의 반격. 중소분쟁으로 소련과 중국은 사이가 안 좋았을 뿐 더러 베트남 또한 중국과 때론 실력대결을 피하지 않을 정도로 껄끄러웠다. 이들 관계는 지배ㆍ종속이 아니라 상호의존이었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불과 수년 후에 베트남과 중국이 전투를 시작했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는 게 맥나마라의 고백이다. 독립과 자주를 열망하는 아시아의 민족주의를 미국은 너무 몰랐다. 도미노 이론은, 이론이라기보다 그저 무지의 결정체였을 뿐이다.


 적과의 대화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ㆍ서각수 옮김 

 원더박스 발행ㆍ224쪽ㆍ1만5,000원 

이런 방식으로 양측은 라오스의 중립화 모델을 베트남에 적용하는 평화협상이 깨진 이유, 이탈리아와 폴란드가 가세했던 비밀평화교섭 ‘마리골드 협상’과 소련이 제안했던 ‘선플라워 협상’의 내막, 대대적 북폭의 원인이 됐던 쁠래이꾸 공군기지 공격 사건의 진실, 지극히 관료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던 하노이 공습의 실상 등을 차례차례 확인해 나간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북폭’의 효과다. 맥나마라는 북베트남 지도부를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했다. 북베트남이 끝내 협상에 임하지 않은 것은 인민의 희생을 가벼이 여긴 게 아니냐고까지 한다. 격분한 쩐꽝꼬는 이렇게 되받아친다. “우리는 이와 같이 폭탄이 비오듯 퍼붓는 가운데 왜 협상에 응하는가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만 했을 겁니다.” 압도적 무력은 오히려 더 결사적인 저항을 불러왔을 뿐이다.

맥나마라는 이 격렬했던 대화를 통해 자신의 화두를 풀었을까. 그는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 적을 ‘오해’하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 호들갑스럽게 공포를 퍼뜨리는 것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그의 본뜻이 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비록 상대가 적일지라도 최고지도자끼리의 대화, 그렇습니다,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북한, 미국, 중국 등의 협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희망과 기대, 우려와 질시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이 협상이 어디로, 얼마만큼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맥나마라가 남긴 교훈은 한반도에서 작동하고 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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