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노동계(한국노총)가 다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실험 모델인 광주시의 현대자동차 위탁조립공장 투자유치사업이 무산 위기에 빠진 원인을 노동계의 탓으로 돌리는 이용섭 광주시장의 태도 때문이다. 한국노총 광주본부가 지난 19일 현대차 투자유치사업 불참을 선언한 뒤 애써 억누르고 있던 감정의 ‘끓는점’을 건드린 건 이 시장의 몇 줄 안 되는 글이었다. 이 시장이 한국노총의 불참 발표 후 8시간36분 만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놓은 공식 반응은 노동계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시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3박5일의 유럽 출장에서 돌아와 보니, 광주형일 자리사업인 현대자동차 투자협약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한국노총 광주본부의 성명서가 기다리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출장 떠나기에 앞서 이미 협상과정에 노동계 참여를 보장했고 그렇게 간절하게 호소문까지 발표했는데도 진정성이 통하지 않아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은 이어 “더욱이 불참 이유로 노동계 배제, 연봉 2,100만원 등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들을 열거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시장은 “전임 시장과 지역노동계가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일자리 사업을 민선 7기의 후임 시장이 그대로 이행하겠다는 것인데…. 광주의 미래가 걱정이다”고 글을 맺었다.
이 시장의 다섯 문장으로 된 짧은 소회에 노동계는 가슴을 쳤다. 노동계의 현대차 투자유치 사업 불참을 바라보는 이 시장의 위험한 현실인식 탓이다. 한국노총은 “협상 과정에 노동계 참여를 보장했다”는 이 시장의 발언을 두고 “이 시장 말과 아랫사람 말이 다르다. 제발 상황 파악이나 제대로 하고 이야기하라”고 쏘아붙였다. 한국노총은 투자협상에 직접 참여하는 걸 요구했지만 정작 광주시 투자협상단은 노동계의 의견을 현대차에 전달만 하겠다고 딴소리만 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 시장이 “(한국노총이) 불참 이유로 사실이 아닌 내용들을 열거했다”고 한 데 대해서도 발끈했다. 한국노총은 “사실이 아닌 게 있다면 진실을 밝혀라. 진실을 숨기고 남의 탓만 하는 게 시장이 할 일이냐”며 “당장 시가 6월 10일 노사민정 참여단체 관계자 중 노동계만 쏙 뺀 채 보안각서를 받고 협상 내용을 공개했는데, 왜 우리에겐 공개를 못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의 반값 임금’ 논란을 낳았던 연봉 2,100만원 문제도 보안각서를 쓰고 협상 내용을 살펴봤던 복수의 인사들에게 확인했으니 과연 누구 말이 맞는지 가려보자는 것이다.
이 시장의 ‘남 탓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시장은 14일 유럽으로 출장 가기 전 노동계의 참여를 호소하면서 “모든 정책은 때가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도 노사민정이 함께 하지 못하고 더 지체되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언했다.
이 시장의 ‘네 탓 타령‘을 두고 시청 안팎에선 현대차 투자협상 실패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출구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통 관료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초대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 시장이 시정운영체계를 일자리 중심으로 재편해 놓고 첫 사업이 무산될 경우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시장이 ‘전임 시장과 지역노동계가 시민들에게 약속한 일자리사업을 민선 7기의 후임 시장이 그대로 이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시장이 ‘8월 중 현대차 투자협약’을 공언하며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한 조급증을 내비친 뒤 갖가지 비판 여론에 직면하며 지지율이 추락하자 이를 막기 위해 ‘남 탓’을 해대며 시민들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성과가 없으니 초조해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니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노동계의 한 인사는 “이 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광주의 미래가 걱정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이 언급이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용섭 시장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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