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라고 해서 푹 쉴 수가 없게 됐어요.”
직장 3년차 김동연(34)씨는 이번 5일짜리 추석 연휴를 4살짜리 조카 돌보는데 보내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누나 부부가 해외 여행을 떠나기로 하면서 어린 조카를 자신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것. 하나뿐인 조카라 대놓고 거절도 못했다는 김씨는 “작년 추석에 누나가 같은 부탁을 했을 땐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조카조차 미워 보인다”고 털어놨다.
추석 연휴를 맞아 30대 미혼남녀들의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친척들이 어린 조카들을 맡기면서 “‘명절용 조카 시터(sitter)’가 됐다”는 하소연. 연휴 기간 따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1년에 몇 안 되는 휴식을 빼앗긴다는 불만이다.
이유선(32)씨는 조카 돌보기를 두고 결국 오빠와 한 바탕 말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이씨는 부모님이 머물고 있는 본가(本家)에 머물며 일을 도우려 했지만, 오빠 부부가 본가에 조카를 맡기고 ‘호캉스(호텔+바캉스)’를 간다는 사실을 듣고 기분이 상한 것. 이씨는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아이가 생기고 나서 부부가 단둘이 놀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이해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뻔히 명절 준비에 바쁜 데 조카를 덜렁 맡긴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인 4년차 박모(35)씨는 “당장 결혼과 출산 욕구가 없어서 명절마다 부모님 잔소리에 시달리는데, 조카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으니 화가 날 수 밖에 없다”며 “여기에 아이를 낳아서 길러본 경험도 없어 조카에 대한 책임을 지우니 부담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조카를 맡기는 부부들도 할 말은 있다. “그래도 가족에게 맡기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설명. 이번 추석에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박기훈(35)씨는 “추석 전부터 가족들에게 힘들게 부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설명했다”며 “아이를 맡길 시설이 거의 없고 대안이 없으니 가족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