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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촛불정신, 욕망의 사회, 그리고 정치

입력
2018.09.20 10:3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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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속된 촛불혁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그 이념은 문재인 정권에 의해 계승되었다. 촛불정권임을 자처한 문재인 정권은 ‘균등한 기회, 공정한 경쟁, 공평한 분배’ 원칙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하고, 소통정치, 적폐청산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을 추구해왔다. 이런 노력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하는지 그리고 그 정책들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문재인 정권은 촛불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나름대로 힘써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시민사회에서는 촛불정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촛불혁명을 주도했던 시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인지 의아할 정도로 시민사회의 현재 상황은 혼탁하기 그지없다. 비근한 예로 아파트 값 폭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그런 혼란상을 극명히 보여준다. 도처에서 아파트 값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녀회가 담합을 서슴지 않으며, 소위 ‘로또아파트’ 당첨으로 전매차익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불법과 편법을 자행하고 있다. 일부 공인중개사들도 시세조작에 가담하여 아파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아파트 값 폭등으로 고삐가 풀린 사람들의 욕망은 그 동안 조금씩 형성되어온 사회적 자본-신뢰, 준법과 예의, 상호존중과 배려-을 여지없이 파괴하고 있다. 아파트 소유주들이 재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공공임대주택이나 특수학교 건설에 결사 반대하는 현상은 흔한 일이 되었다. 집값을 올리기 위해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으면서도 정작 불로소득에 매기는 합법적인 세금은 부당하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아파트 가격 담합이나 자전 거래가 시장경제를 왜곡시키는 현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파트 시장을 안정화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은 자유 시장경제에 역행한다고 비난해댄다. 비정상적인 아파트 가격 폭등에 한숨짓는 무주택자들을 무능한 사람들로 치부하거나 가진 자들을 시기하는 부도덕한 사람들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고가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과 값싼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 사이에 극심한 위화감과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 어디에서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촛불시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불법을 범하든 편법을 쓰든 그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쟁취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의식이 팽배해 있다. 정녕 이 사회가 살을 에는 추위와 강풍을 무릅쓰고 촛불을 지폈던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란 말인가!

인간의 욕망은 사회제도와 상호작용한다. 사람들의 욕망이 특정한 제도를 만들게도 하지만 사회제도가 사람들의 욕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통해 사회적 목표들을 추구할 수 있다. 경제성장을 이루기도 하고 사회통합을 이루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파트 폭등을 둘러싼 현재의 갈등은 다양한 계층들의 욕망을 적절히 조화시키지 못한 정치의 실패 탓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갈등은 부유한 계층의 욕망을 자극해 신속히 경제성장을 이루려 했던 전 정권들의 잘못에 기인한 바 크지만, 집권한지 1년이 훌쩍 넘어서도 갈등을 전혀 완화시키지 못한 문재인 정권도 결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혼란스런 시민사회에 촛불정신을 일깨움으로써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 건설의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권의 현명하고 단호한 대처가 절실하다. 사소한 불법 행위라도 법에 따라 엄정히 다룰 필요가 있으며,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최소화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근로가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 불로소득을 찾아 다니는 부동자금을 생산적인 산업으로 유인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산업정책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사회구성원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분배의 공평성도 높여야 한다.

촛불혁명은 불의한 정권을 심판함으로써 새로운 체제 건설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번에는 정치가 촛불정신이 실종되어버린 어지러운 시민사회를 쇄신하기 위해 나설 차례다. 시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투기와 불법이 판치는 시장은 개인들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선택을 유인해내지 못해 사회의 번영을 견인해낼 수 없다. 그것은 부도덕한 탐욕이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파괴하는 노름판에 불과할 뿐이다. 신뢰와 믿음, 정직과 정의감이 실종된 시민사회와 시장은 ‘공정한 협력체계’가 아니라 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글사회와 다를 바 없다.

문재인 정권이 꺼져가는 촛불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불신과 시기, 의심과 위화감이 팽배해 있는 시민사회를 호혜적인 협동체계로 회생시키고, 투전판이 된 시장을 공정한 시장경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부풀대로 부푼 사람들의 욕망을 진정시킬 수 있는 현명한 대응이 시급하다. 집권 2기에 들어선 촛불정권의 분발을 촉구한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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