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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선을 넘은 동식물

입력
2018.09.20 11:04
수정
2018.09.20 17: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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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과 달맞이꽃은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꽃이다. 실제 꽃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 친숙한 나팔꽃과 달맞이꽃. 이 두 꽃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핀다. 7월에 피기 시작해 8월에 한창 피더니, 기온이 내려가며 꽃도 점점 줄어든다. 이제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요즘 자꾸만 나팔꽃과 달맞이꽃에 눈이 간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다녀도 낮에는 두 꽃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 두 꽃 모두 낮에는 꽃잎을 오므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팔꽃과 달맞이꽃은 자신의 시간에 맞춰 꽃잎을 폈다 오므린다. 그들의 영어 이름은 꽃잎을 여는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나팔꽃은 morning glory, 달맞이꽃은 evening primrose다. 나팔꽃을 보려면 모닝에, 달맞이꽃을 보려면 이브닝에 찾아봐야 한다.

나팔꽃과 달맞이꽃은 그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친근해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을 것 같지만 둘 다 외국에서 건너왔다. 나팔꽃은 인도가, 달맞이꽃은 남미가 원산지다.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외래종 식물이 살아간다. 국립수목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항만도시의 전체 식생에서 외래식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48.6%라고 한다. 마크로카르파달맞이, 오피키날리스갈레가, 울렉스 같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생소한 식물들도 있지만, 나팔꽃이나 달맞이꽃에서 보듯이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살던 식물처럼 느껴지는 친숙한 식물도 많다. 계란꽃이라는 별명까지 가진 개망초도, 토끼가 잘 먹는 토끼풀도 외래종이다.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의 상당수는 유럽에서 온 서양민들레다. 이들이 국경을 넘는 경로는 다양한데, 원예종으로 들여왔다가 야생화되기도 하고, 바닷물에 떠서 태평양을 건너기도 하고, 외국을 오가는 사람의 신발이나 화물에 묻어오기도 한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국경을 넘는다. 그렇게 새로 온 녀석 중 몇몇은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2007년, 열대지방에 살던 꽃매미라는 낯선 곤충이 우리 도시를 점령했다. 공원, 아파트화단, 건물 벽, 길바닥 등 도시 곳곳에 출현했다. 낯선 곤충은 천적이 없는 환경 속에서 개체수를 급격히 늘려갔다. 새나 거미 등 곤충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들도 생전 처음 보는 모습에, 날개를 펴면 시뻘건 속살이 드러나는 꽃매미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몇몇 모험심 강한 녀석들은 꽃매미를 먹었고, 먹을 만했고, 먹을 만하다는 소문은 쫙 펴졌다. 농약통을 든 인간과의 합동작전으로 꽃매미의 개체수는 급격히 줄었다. 꽃매미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모든 것들을 제치고 홀로 살아갈 것만 같았던 기세는 꺾였다.

외국에서 생물들이 건너오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생태계를 교란시킬 것 같지만, 낯선 땅에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적응하며 살던 땅에서의 생존확률이 훨씬 높다. 그래서 낯선 땅에 온 많은 외래종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다. 새로운 환경을 이겨 낸 식물 중 일부가 기존의 질서를 깨고 번성하기도 한다. 그러면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균형점을 찾아간다. 새로 건너온 녀석도, 원래 살던 녀석도 서로에게 적응하며 함께 살아간다. 이쯤 되면 외래종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했는지, 귀화식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나팔꽃과 달맞이꽃은 귀화식물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

이제 곧 나팔꽃과 달맞이꽃이 지면, 그 빈자리는 온갖 종류의 들국화가 메워 줄 것이다. 벌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와 같은 토종 국화와 코스모스, 미국쑥부쟁이, 서양민들레와 같은 국경을 넘어 온 국화가 함께 필 것이다. 원래 함께 있었던 것처럼.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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