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여구의 시신을 실은 냉동트럭이 당국의 감시 소홀로 1주일간 주택가에 방치됐다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 멕시코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살인사건이 폭증하고 있지만 시신안치소 확보는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자 멕시코 당국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피살자 유족모임과 인권단체는 당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18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시신냉동트럭 실종사건’이 발생한 곳은 멕시코 중서부 할리스코주. 할리스코주는 시신안치소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시신을 보관하는 냉동 트럭을 임대해 주도(州都)인 과달라하라의 법의학연구소 내 시신안치소 인근에 운영하는 고육책을 써왔다. 강력범죄 빈발로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유가족이 인수하지 않으면 시신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한 멕시코 법 때문이었다. 급증하는 시신과 주민 반대로 새로운 안치소를 마련하지 못하자 주 당국이 결국 냉동트럭이라는 고육책을 낸 것이다.
170여구 시신이 실려 있던 냉동트럭이 홀연히 사라진 것은 지난 7일. 종적을 감췄던 이 트럭은 1주일 뒤인 14일 법의학연구소에서 2㎞가량 떨어진 틀라케파케 지역의 한 창고 주변에서 발견됐다. 이 기간 시신을 실은 트럭은 과달라하라에서 서남쪽으로 30여㎞ 떨어진 틀라호물코까지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멕시코 당국은 누가 트럭을 틀라호물코로 이동시켰는지 그리고 어떤 경로로 다시 돌아왔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NYT는 멕시코 언론을 인용, 이 트럭을 발견했던 틀라호물코 주민들이 이 트럭이 주택가 인근 공터에 서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이 트럭을 목격했던 틀라호물코의 한 여성은 LAT에 “트럭에서 끔찍한 악취가 났었다”고 증언했다.
할리스코주지사는 17일 관리소홀 책임을 물어 시신안치소 책임자인 루이스 옥타비오 코테로를 해임했지만 논란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주검찰에 따르면 시신들은 신원미상이거나 범죄피해자다. 수사당국이 냉동차 이동명령을 내린 주체를 찾고 있는 가운데 코테로는 자신이 희생양이 됐다고 반발하는 등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번 사건을 ‘이동식 무덤’사건이라 부르면서 당국의 관리 소홀을 질타하고 있다. 멕시코 국가인권위원회는 18일“일련의 사건은 망자의 존엄을 훼손할뿐더러 유가족들의 기본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비판성명을 냈고, 인권단체들도 이번 사건은‘시신유기’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주요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폭증하는 멕시코의 살인사건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올해 7월까지 멕시코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1만8,994건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2017년에도 멕시코에서는 사상 최고인 2만8,702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올해 또다시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경신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할리스코주에서도 올해 7월까지 전년보다 47% 늘어난 1,243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전문가들은 마약거래에 연루된 범죄조직이 이 지역에서 득세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 범죄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지만 고질적인 경찰 부패 등으로 인한 치안부재로 멕시코 내 살인사건은 앞으로도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과달라하라에서는 대학생 3명 실종사건이 발생했는데 이후 시신이 염산에 훼손된 채 발견되는 등 범죄의 잔혹성도 더해지고 있다. 지난 7월 치러진 멕시코 대선에서도 마약밀수와 연루된 범죄조직 소탕은 주요쟁점이 되기도 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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