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두 달여 만에 이용섭 광주시장의 일자리 정책과 정치력이 중대한 시험대 위에 올랐다. 노사민정 대타협을 전제로 하는 ‘광주형 일자리’ 실험 모델인 현대자동차 위탁조립공장 투자유치사업이 그간 협상 과정에서 배제됐던 한국노총의 공식 불참 선언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노동계와 파트너십을 유지해 현대차 투자유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노동계의 불신이 극에 달한 데다, 현대차도 노사민정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자칫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중 ‘혁신 아이콘’으로 주목 받았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마저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한국노총 광주본부는 19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시간 이후 광주시민들을 비정규직보다 못한 일터로 몰아넣고 최저임금에 허덕이게 하려는 광주시의 현대차 투자협상과 관련된 모든 논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 시장이 지난 14일 “시대적 소명의식으로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함께 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 드린다”고 지역 노동계의 참여를 호소한 데 따른 한국노총의 공식 답변이다.
한국노총이 이날 광주시가 추진 중인 현대차와의 투자유치 협상에 불참을 선언한 것은 사회적 연대와 혁신을 통한 일자리 구조 개선(양극화 해소)을 목표로 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대기업 이익 밀어주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노총은 “광주시가 사회적 대화를 내팽개치며 밀실협상으로 일관한 데다, 현대차에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최악의 조건을 붙잡고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맹비판했다.
시가 애초 1인 당 평균 4,000만원으로 설계했던 청년 대상 생산직 초임 연봉이 현대차와 협상 과정에서 2,100만원(기본급 1,800만원+각종 수당 300만원)까지 떨어지고 공장 설립 후 5년간 노조를 설립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논의되면서 ‘반의 반값공장’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광주시 생활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광주시의 협상이 노동계의 양보만을 요구하는 쪽으로 끌려 다니면서 무조건 노동계에 참여만 하라고 한다”고 비난했다.
광주시가 현대차와 협상 과정에서 노정한 비밀주의와 노동계 참여 배제도 한국노총의 불참 배경으로 꼽힌다. 시는 위탁조립공장 설립이 노사민정 대타협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도 협상 과정에서 그 한 축인 노동계를 배제했고, 그간 노동계의 협상 내용 공개와 협상단 참여 보장 요구마저 묵살했다. 한국노총이 이날 광주형 일자리의 4대 원칙 중 하나인 적정임금 보장과 현대차 투자 협상안 공개, 노동계의 투자협상 참여 방안 제시 등을 시에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대통령은 노동 존중을 중요시하는데 광주시는 노동 배제를 당연시한다”고 꼬집었다.
현대차 투자협상이 광주시의 준비 부족과 조급함 등으로 답보상태에 빠졌는데도, 시가 그 책임을 노동계에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이 시장이 지난 14일 노동계의 참여를 호소하면서 “모든 정책은 때가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도 노사민정이 함께 하지 못하고 더 지체되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언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놓고 노동계 일각에선 “광주형 일자리 사업 실패에 따른 시의 출구전략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시의 한 관계자는 “노동계가 끝까지 참여를 거부하면 (서로)부담 없이 가는 쪽으로 대안을 연구 중”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어서 노사민정으로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연구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이 현대차 투자유치사업 불참을 선언하자 현대차도 이날 노사민정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자 검토를 철회할 수 있다고 나와 광주시는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는 투자자의 일원으로서 광주지역 노사민정 합의를 전제로 투자를 검토한 것으로 노사민정 합의가 안 되면 현실적으로 사업 참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결국 시가 좌초 위기에 처한 현대차 투자협상의 얽힌 실타래를 풀고 이해당사자간 대화의 불씨를 살려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하지만 시로선 노동계가 등을 돌리게 된 원인을 제공한 터라 한국노총을 내놓고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협상 테이블에 노동계가 앉는 데 극도의 거부감을 갖는 현대차를 원망할 수도 없어 가슴만 졸이고 있다. 시는 “노동계와 시민들의 의견을 조율해 투자유치가 성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뜻대로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는 반값 임금이 아니라,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목표”라면서 “노동계가 요구한 사안에 대해선 이미 수용의사를 밝혔고 그 방법에 대해선 현대차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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