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와 터키가 시리아 반군 점령지인 이들리브주에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가 예고해 온 이들리브 군사작전과 민간인 300만명이 휘말리는 인도주의 위기는 일단 피했지만, 분쟁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10월 15일부터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사이 15~20㎞ 거리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고 집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이 합의로 이들리브를 뒤덮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는 면했다”라고 말했다.
합의 덕에 시리아와 러시아가 공언해 온 이들리브주 반군 축출을 위한 군사작전은 일단 연기됐다. 터키는 이들리브 분쟁으로 시리아 정부군이 북부까지 올라올 경우 이미 시리아 난민 350만명이 머무는 터키에 더 많은 난민이 밀려드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러시아로서도 터키가 협력하지 않는 단독 공격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최근 급속도로 미국과 관계가 나빠진 터키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러-터키 합의 지켜도 HTSㆍ쿠르드 변수
하지만 무력 충돌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선 이들리브를 장악하고 있는 무장집단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문제다. HTS는 시리아 반군 가운데 최대 규모 집단이나, 과거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의 후신이라는 이유로 터키와 러시아 모두가 축출을 공언하고 있다. 현재 이들리브주의 중심지인 이들리브를 장악하고 있는데, 이 지역이 비무장지대의 일부로 설정될 경우 무력 저항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지원 아래 북동부 석유 산지를 점유하고 있는 쿠르드족 무장단체 시리아민주군(SDF)의 향방도 변수다. 자국 내 쿠르드 반군에 시달리는 터키 입장에서는 SDF의 주력인 쿠르드 인민수비대(YPG)야말로 눈엣가시다. 반면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입장을 바꿔 미군의 무기한 주둔을 결정했다. SDF는 시리아 정부와 암묵적인 동맹을 맺고 북부 반군을 견제해 왔지만 터키와 러시아의 협력에 시리아가 동참한다면 구도가 뒤바뀔 수 있다.
시리아 개입 수위 높인 이스라엘
여기에 최근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 강도를 늘리면서 새로운 분쟁 유발자로 떠오르고 있다. 17일 시리아인권감시단(SOHR)은 지난 한 달간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친이란 무장대원 113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공공연하게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도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5일에는 이례적으로 지난 2년간 시리아 영토 내에 200여회 공습을 가했다고 인정하며 개입 의사를 노골화했다.
시리아 관영 알이크바리야방송은 15일 다마스쿠스 공항이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을 당한 데 이어 17일에도 서부 해안 도시 라타키아가 공습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미사일을 요격하던 시리아 대공포의 공격에 추락, 러시아 군인 15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러시아군은 18일 시리아 대신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고 러시아 외교부는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내 무기 시설을 공습한 사실은 인정하되 “러시아 군용기 추락의 책임은 전적으로 시리아 정부에 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과거에도 시리아에서의 비무장 합의가 강대국 이해 관계가 엇갈리면서 여러 차례 파기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휴전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간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의 시리아 담당 대표 로레인 브럼웰은 AP통신에 “민간인을 보호하는 국제 강대국들의 지속성 있는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시리아를 둘러싼 강대국 모두가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