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ㆍ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주택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그간 대출 영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순이익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던 이자 수익이 줄어들면서 은행 수익성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일 은행권 등에 따르면 9ㆍ13 대책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되는 걸 틀어막는 게 골자다. 집이 한 채라도 있으면 규제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 어려워진다. 임대사업자는 투기지역ㆍ투기과열지구에서 받을 수 있는 주택대출 한도가 반토막 나고, 이미 대출(가계대출, 사업자대출)이 있다면 투기지역 내 주택대출이 막힌다. 전세자금대출 역시 다주택자에겐 공적보증이 금지된다.
대출영업 덕분에 성장세를 구가해온 은행 입장에선 달갑잖은 고강도 규제다. 은행 대출은 가계 주택대출을 중심으로 최근까지도 급등세를 이어왔다. 연초 528조원(지난해 12월말 기준)이던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 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552조원으로 늘었다. 특히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규제하는 와중에도 은행들은 전세자금대출과 임대사업자대출을 통해 호황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전세대출 잔액은 1월 말 46조원에서 지난달 말 57조원으로 성장했고, 같은 기간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8%에서 10.5%로 늘었다.
대출 호황에 힘입어 은행 수익성은 대폭 개선됐다. 상반기 국내 은행 이자이익은 사상 최대 규모인 19조7,000억원으로, 총이익(22조8,000억원)의 83%에 달했다. 덕분에 은행 순이익(총이익에서 비용ㆍ법인세 등 제외) 역시 전년동기보다 1.7배 늘어난 8조원을 기록했다. 은행 이자이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예대금리차 역시 7월 1.85%포인트로 5개월 만에 최대치로 확대됐다. 시중금리는 오르고 있지만 은행은 예금, 양도성예금증서(CD), 은행채 등을 통해 저리 자금을 조달해 대출을 내주는 까닭이다.
시장에선 9ㆍ13 대책으로 신규 대출이 감소하면서 은행 실적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음달부터 기존 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보다 더욱 강력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시행돼 은행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전배승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주택대출 수요가 왕성한 지역에 임대사업자에게 강도 높은 LTV 제한(80→40%)이 적용돼 향후 대출 증가의 억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개인사업자 대출 역시 임대사업자 대출 규제 강화로 실적 둔화가 불가피해 은행권의 중장기 성장 여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경완 메리츠종금 연구원은 “대출 증가율 둔화로 내년 이후 은행의 자산 성장률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밑돌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은행 주가 역시 9ㆍ13 대책 발표 이후 하락 추세다. 대출 규제 시행일부터 3거래일(14~18일) 동안 코스피지수는 0.99% 오른 반면 KB금융(-3.63%), 신한금융(-2.77%), 우리은행(-2.42%), 하나금융(-3.99%) 등 주요 은행주는 내내 하락했다. 이번 대책으로 은행주가 받는 타격이 건설주보다 더 클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추가 부동산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은행주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 은행들은 실무부서를 중심으로 이번 규제가 실적에 미칠 영향과 대책 마련 등에 부심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간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자금대출이 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왔는데 이번 규제로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정책에 꾸준히 대비해온 만큼 장기적 수익 감소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연내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은행권 수익성이 오히려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영업 환경 변화를 계기로 ‘이자 장사’ 논란에서 벗어나 수익 다변화에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진국은 은행 총수익에서 이자수익과 비이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6대 4 정도인 반면, 국내 은행은 이자수익 비중이 80%를 넘는다”며 “은행은 기업대출, 해외진출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고, 금융지주 또한 비은행 부문의 이익을 늘려 은행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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