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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디바 웅산 “마음을 바로 써야 좋은 음악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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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디바 웅산 “마음을 바로 써야 좋은 음악 나와”

입력
2018.09.19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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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웅산이 지난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녹음실에서 새 앨범 ‘아임 올라이트’ 작업을 하며 스태프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그는 수록곡 ‘유 앤드 더 나이트 앤드 더 뮤직’의 박자를 바꿔 불러보자는 프로듀서 존 비즐리의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재즈는 순간적으로 반응하고 그 느낌을 전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제이피컴퍼니 제공
가수 웅산이 지난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녹음실에서 새 앨범 ‘아임 올라이트’ 작업을 하며 스태프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그는 수록곡 ‘유 앤드 더 나이트 앤드 더 뮤직’의 박자를 바꿔 불러보자는 프로듀서 존 비즐리의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재즈는 순간적으로 반응하고 그 느낌을 전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제이피컴퍼니 제공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성수동의 간판도 없는 한 재즈 카페. 관객으로 찰리정 블루스 밴드 공연을 지켜보던 가수 웅산(본명 김은영)이 마이크를 잡았다. 중저음의 굴곡진 그의 목소리가 눅진하게 무대를 휘감았다. 변심한 연인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앞을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노래 ‘아이 우드 래더 고 블라인드’의 비애는 웅산의 목소리에 실려 더 절절했다. 미국 ‘블루스의 여왕’ 에타 제임스가 부른 명곡으로, 웅산이 2005년 낸 앨범 ‘더 블루스’에 다시 불러 넣을 정도로 좋아했던 노래였다.

 매년 작은 클럽 무대에 서는 이유 

웅산의 깜짝 무대는 오랜 음악 동료인 찰리정 응원을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엔 재즈 음악을 즐긴다는 도올 김용옥도 함께했다. 웅산이 김용옥에게 “암행을 나가시죠”라며 찰리정의 공연에 동행했다고 한다.

클 웅(雄)에 뫼 산(山)자, ‘큰 산’이란 예명처럼 재즈의 큰 산이 된 웅산은 자유롭고 소박하게 무대를 즐긴다. 세계를 누비는 이 가수는 1년에 한두 번씩 대학로에 있는 재즈 카페 천년동안도에 선다. 17일 서울 논현동 유니버셜뮤직 사무실에서 만난 웅산은 이 작은 클럽 공연이 “중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제가 (가수로) 태어난 곳에서의 무대니까요. 초심을 찾으러 일부러 가기도 하죠. 클럽에서 노래하면 어려서 재즈를 처음 시작했던 모습이 떠오르고 그때 감성이 나오거든요.” 웅산은 1995년 12월 한 재즈클럽에서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인 신관웅을 만나면서 이듬해부터 정식으로 무대에 올랐다.

웅산은 가수로서 들꽃 같은 삶을 꿈꾼다. 그는 15일 카카오톡 프로필에 구광렬 시인의 ‘들꽃’ 문구를 올렸다. ‘주인 없어 좋아라. 바람을 만나면 바람의 꽃이 되고 비를 만나면 비의 꽃이 되어라’. 제이피컴퍼니 제공
웅산은 가수로서 들꽃 같은 삶을 꿈꾼다. 그는 15일 카카오톡 프로필에 구광렬 시인의 ‘들꽃’ 문구를 올렸다. ‘주인 없어 좋아라. 바람을 만나면 바람의 꽃이 되고 비를 만나면 비의 꽃이 되어라’. 제이피컴퍼니 제공

 “날 숨기려 했는데” 성대 이상 후 변화 

웅산은 최근 9집 ‘아임 올라이트’를 냈다. 2016년 낸 8집 ‘템테이션’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직접 만든 앨범 동명 타이틀곡과 ‘러브 이즈 어 루징 게임’을 비롯해 1950년대를 풍미한 미국 보컬그룹 플래터스의 ‘스모크 겟츠 인 유어 아이즈’, 솔 가수 앤 피블스의 ‘아이 캔트 스탠드 더 레인’ 등을 재해석해 실었다.

변화무쌍한 웅산의 보컬은 신작에 사계절같이 펼쳐진다. ‘베어 워크’에서 스캣으로 흥얼거린 그의 목소리는 봄처럼 티 없이 해맑다. 웅산이 ‘아이 러브 유 모어 댄 유 윌 에버 노우’에서 토해 낸 뜨거움은 마음속까지 파고든다. 그의 노래는 앨범 마지막에 실린 ‘텔 미 와이’에서 삭풍처럼 쓸쓸하게 흩어진다.

웅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브라스 밴드를 했고, 대학생 때는 록밴드 돌핀스에서 돌직구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서 2003년 낸 1집 ‘러브 레터스’에서 웅산의 보컬은 지금보다 허스키하고 묵직하다. 그의 소리는 2014년 이후 달라졌다. 성대에 폴립(용종)이 생겨 마음고생을 한 뒤의 일이었다.

“목이 안 좋다 보니 소리를 지르는 건 소음이라고 생각했어요. 날 숨기고 더 작은 소리를 내려했죠. 수술 날짜까지 잡아뒀는데 운 좋게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호전돼 기운을 얻었죠. 고음을 내도 소음처럼 들리지 않게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 더 깊은 감정선을 전달하기 위해 한숨을 토해내는 용기가 생겼어요. 8집과 이번 앨범이 다른 점이에요.”

웅산의 신작엔 소리의 결이 살아 있다. ‘허트리스’에서의 따뜻한 건반 소리와 ‘유 앤드 더 나이트 앤드 더 뮤직’에서의 나른한 베이스 연주는 웅산의 소리에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볕에 바짝 말린 면 옷을 탁탁 털어 갤 때 살아나는 옷감의 사각거리는 소리처럼 즐겁다. 세계적인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존 비즐리 등이 연주와 프로듀싱으로 힘을 보탠 덕분이다. 1998년부터 일본에서 노래하며 재즈 한류를 이끈 웅산은 지난달 도쿄와 나고야, 요코하마 등을 돌며 현지 순회공연을 했다. 12월 9일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노래는 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웅산은 열일곱 살에 충북 단양군 구인사로 들어가 머리를 깎으려 했다. 대중음악계에선 유명한 일화다. 소녀는 1년6개월을 공양했다. 참선하면서도 엉뚱하게 입에서 노래가 터져 나와 결국 속세로 내려왔지만 웅산은 아직도 해마다 구인사를 찾는다. 그는 “마음을 바로 써야 좋은 소리가 나온다”는 가르침을 곱씹으며 노래하려 노력한다. 웅산은 그의 법명이기도 하다. 큰 산처럼 모든 사람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이 담겼다. 그런 법명을 예명으로 쓰는 가수에게 음악은 수행이다. 웅산에게 노래는 “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웅산은 새 앨범에서 “난 괜찮다(‘아임 올라이트’)”며 자신을 다독인다. 무슨 일이 있냐 묻자 “주위에서 ‘왜 결혼 안 하냐’며 걱정하지만 나한텐 너무 멋진 음악이 있으니까 괜찮다는 최면”이라며 웃었다. “아직 음악처럼 날 매료시킨 남자를 못 만났다”는 농담도 했다.

“공연할 때 마지막에 부르는 곡이 ‘예스터데이’(2007)예요. 이렇게 따뜻한 음악을 하고 싶은 가수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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