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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의 '사회적 메시지'

입력
2018.09.19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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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명품브랜드 패션쇼에 등장한 플러스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 애슐리 그레이엄 인스타그램
최근 명품브랜드 패션쇼에 등장한 플러스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 애슐리 그레이엄 인스타그램

하이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몇 년 전엔 특정 성별이나 인종, 신체 사이즈 등에서 이상적인 기준을 잡아 멋진 모습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실용성, 편안함 등을 화두로 건강한 체형이 중시된다. 옷에 몸을 맞추는 시대에서, 몸에 옷을 맞추는 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도 주목 받고 있다. ‘패셔너블하다’는 건 ‘멋짐’에 대한 기존의 편견에서 떨어져 나오는 데서 시작한다. 이어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신체 긍정주의로 향한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취향이 있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 나에게 맞는 걸 하면 된다.

이런 다양한 개성이 예전보다 과감하게 드러나며 하이 패션의 캣워크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많은 브랜드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캣워크 위에 세웠고 패션지의 화보 모델로도 활용했다. 대중적 인기를 끄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도 등장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애슐리 그레이엄은 패션 위크의 맨 앞자리에 초대를 받고 각종 연예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패션 브랜드는 언론에서도 좋은 평을 듣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보다 진취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캣워크와 현실은 조금 동떨어졌다. 플러스 사이즈 패션이 보편화 되려면 갈 길이 멀다. 길거리 매장에서는 여전히 플러스 사이즈의 옷을 찾기 어렵다. 플러스 모델을 캣워크에 세운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보통 16사이즈(한국 사이즈로 88 혹은 105) 이상을 플러스 사이즈라고 하는데, 뉴욕 패션 위크에 참여한 80개 이상의 브랜드 중 실제로 16사이즈 이상 제품을 내놓는 브랜드는 10여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플러스 사이즈 옷은 브랜드 이미지 홍보용으로만 그칠 뿐인가 싶다.

물론 수익성을 안 따질 수가 없다. 예술이나 정치적 성향 등을 강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패션은 결국 비즈니스다. 시장 경쟁이 말도 못하게 치열하다. 컬렉션 한두 번만 시시하게 지나가도 사람들은 한때 빛났던 이름을 옛 추억처럼 떠올릴 뿐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자리를 내놔야 하고, 어쩌면 브랜드가 영원히 폐기될 수도 있다.

정치 · 사회적 성향을 밝히면서 따르는 위험을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는지도 계산해봐야 한다. 실험적인 광고는 자칫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최근 나이키는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주도한 콜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대다수가 긍정적 시선을 보냈지만 반발도 있었다. 정치 성향, 인종 등에 따라 미국 내 찬반 여론이 크게 엇갈렸다. 반발은 자칫 하다간 불매로 이어지고 대차대조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몇몇 진보주의자들은 거대 브랜드들이 뒤늦게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낸다고 비판한다. 혹시 모를 위험은 피하고 브랜드 이미지와 상업적 결실만을 얻어가려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안 하는 브랜드들이 더 많다. 이들이 그런 브랜드보다 능동적 태도를 보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대형 브랜드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정교하게 빚어낸 광고 메시지는 강렬하다. 사회화 과정을 겪는 어린 세대들에게는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가치관의 전환도 불러올 수 있다. 어른들의 책임감과 진정성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

홍보에 사회적 메시지를 드러내면서 진정성을 잃은 사례가 있다. 샤넬을 이끌고 있는 칼 라거펠트는 2014년 샤넬의 패션쇼에서 페미니스트의 시위를 재현했다. 모델들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캣워크 위를 걸었다. 하지만 올해 초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포즈를 취할 때 물어봐야 하고, 타인의 손이 닿는 게 싫은 모델은 수녀원이나 가라”는 악담을 했다. 이제 2014년 때 보여줬던 그의 모습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플러스 사이즈, 성 지향성, 노동, 이민자 문제 등 브랜드가 사회적 메시지로 담아낸 이야기들은 대중의 요구가 아닌 스스로가 꺼낸 것이다. 진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 이목을 끌어서 티셔츠 한 장이라도 더 팔려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브랜드는 세련된 기법으로 이슈를 만들었고, 반응을 얻었고,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다. 더 나아가 판매율 증가라는 수익도 누릴 수 있었다. 그에 따른 책임도 필요한 법이다. 홍보에도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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