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ㆍMERS) 백신 개발은 현재로선 우리나라가 가장 빠르다. 하지만 백신이 나와도 MERS를 퇴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7일 서울대학교 내 국제백신연구소(IVI)에서 만난 윤인규(52) IVI 수석자문관 겸 ‘뎅기 및 흰줄숲모기 매개 질병 컨소시엄’ 단장은 MERS 백신 개발 성공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MERS를 단기간 안에 퇴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윤 자문관은 뎅기, 지카,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국내에 드문 전문가다.
IVI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메르스 백신 중 3가지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영국과 독일 백신이 임상시험 첫 단계(1상)를 최근 시작했고, IVI가 중소기업 진원생명과학과 함께 개발 중인 백신이 미국에서 1상을 마친 뒤 국내에서 두 번째 임상 참가자들의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개발 속도로 보면 국산이 가장 빠르다. 이 임상시험 연구에 참여하는 윤 자문관은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메르스 백신이 전혀 없었던 걸 고려하면 상당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국산 백신이 개발에 속도가 날 수 있는 건 유전자(DNA)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메르스 바이러스 DNA의 일부를 떼어내 생체전달물질(플라스미드)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병원체 전체나 일부의 독성을 약화해 만드는 일반적인 백신보다 제조 과정에 시간과 비용이 덜 들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IVI와 진원생명과학은 이렇게 만든 백신을 두 번째 임상시험에서 건강한 성인에게 총 3차례 투여해 어떤 면역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다.
진짜 난관은 그 이후다. 백신이 허가를 받으려면 실제 환자에게도 접종해 효능과 안전성을 건강한 사람과 비교해봐야 하는데, 워낙 환자가 적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 자문관은 “일단 개발을 멈췄다가 향후 환자가 다수 발생했을 때 동의를 얻어 접종하거나, 낙타를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를 인간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독일, 영국 백신 모두 낙타 연구를 병행하고 있지만, 낙타처럼 큰 동물과 바이러스를 함께 다뤄본 경험도 별로 없는 데다 그만한 실험 설비도 충분치 않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메르스의 대부분이 낙타에서 발생해왔다는 점은 퇴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천연두처럼 백신이 사람에게서 메르스를 퇴치한다 해도 낙타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다면 재발 우려는 여전하다. 윤 자문관은 “낙타는 메르스 바이러스의 저장고”라며 “감염돼도 심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 낙타에서 메르스를 퇴치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종류다. 2003년 유행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ㆍSARS)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인이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사스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쉽고 빠르게 퍼졌지만, 메르스는 그보다 덜하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처럼 유전자 돌연변이도 잦지 않다. 그러나 메르스 치사율은 35%(3년 전 한국 유행 당시엔 19%)로 사스(10%)보다 훨씬 높다. 윤 자문관은 “백신을 상용화하려면 되도록 많은 후보물질을 연구하고, 사람은 물론 낙타 백신도 함께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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