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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납품 위해선 수술실 갑질도 견딜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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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납품 위해선 수술실 갑질도 견딜 수밖에”

입력
2018.09.28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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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부산 영도구 모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 판매사원(원 안)이 의사 대신 어깨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복을 입고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다. 환자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부산경찰청 제공 CCTV 캡처
지난 5월 10일 부산 영도구 모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 판매사원(원 안)이 의사 대신 어깨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복을 입고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다. 환자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부산경찰청 제공 CCTV 캡처

서울의 한 중소 의료기기 업체 영업부장 A씨는 정형외과 개원의들 사이에서 ‘수술 잘 하는 영업사원’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의료기기 업계에 발을 들인 40대 중반이 된 A씨는 현재 중소 의료기기 업체에서 정형외과에서 사용하는 각종 수술기구와 치료 재료 납품을 총괄하고 있다. 그와 거래를 하는 원장들은 수술 시 수술실을 비우지 않고 과정을 살피니 그나마 안심이지만, 최근 부산의 한 정형외과에서 발생한 대리수술 사고처럼 의사가 수술실을 비워버리면 딱히 방법은 없다. 병원에 지속적으로 의료기기를 납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들이 A씨처럼 수술방에서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나름 훈련과정을 거친다. 이들은 업체에 입사해 3~6개월 정도 선배 영업사원의 수술 장면을 참관하며 수술실 환경에 적응한다. 선배들에게 수술에 필요한 기본적인 해부학 교육도 받는다. 이를 테면 관절‧척추수술 시 뼈의 절삭이나 수술 부위 시야 확보를 위해 어느 곳을 잡고 있어야 하고, 절개 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 등을 숙지한다. 물론 의사가 아닌 선배 영업사원에게 교육을 받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의료기기 유통경로=그래픽 강준구 기자
의료기기 유통경로=그래픽 강준구 기자

병원 수술방에 상주할 수 있도록 의료기기 업체(대리점)는 영업사원에게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호조무사의 대리수술 또한 여러 차례 적발이 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간호조무사의 경우 영업사원과 달리 수술방 참여 자체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련 교육 수료와 국가고시 등 적잖은 과정이 있지만 수술 보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드는 셈이다.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병원에 상주하면서 병원 관계자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기 때문에 향후 거래가 종료되는 경우 해당 병원에 정식적으로 취업하기도 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병원에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술방에 들어가면 의사의 ‘갑질’을 견뎌야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의료기기 업체 여러 곳에 몸 담았던 K(40)씨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수술이 생각대로 잘 진행되지 않을 경우 수술방에서 수술 장비를 집어 던지고 발로 무릎을 차는 의사들도 있다고 들었다”며 “물론 영업사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횡포는 아니지만,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영업사원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업체가 병원과 이면계약을 통해 의료기기 판매 이익의 10~30% 가량을 병원 측에 제공하는 ‘백 디시(Back DC)’를 담당하는 직원도 있다. 주로 ‘디시율’을 정하는 협상을 담당하지만, 기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실제 돈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보통 병원 원장 개인통장에 입금을 하거나 개인카드를 지급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통상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원장을 직접 찾아가 현금을 전달한다고 한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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