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환갑을 넘긴 강명구(61)씨가 이를 몸소 증명하고 있다. 강씨는 지난해 9월 1일 유럽 북서쪽의 끝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382일째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40㎞가 넘는 마라톤 경기를 홀로 치르고 있다. 그는 통일을 염원하는 1만6,000㎞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북한 횡단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강씨는 원래 마라톤 선수가 아니었다.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중퇴하고 199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그는 미국에서 가게 점원, 계산원 등 안 해본 일 없이 열심히 살았다. 유일한 취미는 마라톤이었다. 쉰 두 살이던 2009년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미국 각지의 유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40여 차례 완주했다.
그는 2015년 운영하던 식당을 정리하고 미국 대륙 횡단 5,200㎞를 달렸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인생 이모작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생각하려고 출발한 마라톤이었다. 이 때 내건 슬로건이 ‘남북 평화 통일’이었다. 텐트, 음식 등을 달리기용 유모차에 싣고 뛰면서 통일과 평화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 해 7월 강씨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이듬해 3월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갈등을 겪고 있던 경북 성주 소성리에서 서울까지 270.5㎞를 뛰는 ‘평화 마라톤 순례’에 참가했다. 6월에는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을 출발해 성주를 거쳐 서울까지 18일 동안 달렸다. 시민들은 그를 ‘평화 마라토너’로 부르기 시작했다.
미사일 실험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던 지난해 그는 다시 한 번 큰 그림을 그렸다. 남북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유라시아 횡단 마라톤이 그것이었다. 항일애국지사인 이준 열사 기념관이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독일, 헝가리, 터키, 이란, 카자흐스탄, 중국을 거쳐 북한을 통과하는 대장정이었다. 그는 17일 현재 중국 베이징을 통과해 허베이성 지역을 달리고 있다. 북한 국경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과연 강씨는 북한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는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통해 “며칠 전 베이징에서 노영민 주중 대사 면담이 있었는데 남북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제 문제를 제일 먼저 말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1년 전 출발할 당시만 해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 때도 저는 북한 통과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에 따라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명구 평화마라토너의 북한 입국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지만 이날 오전까지 참여인원이 1,000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20만명 이상이 참여하면 청와대는 공식 답변을 해야 한다.
강씨는 국민들의 성원으로 이번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처음 내가 길을 나설 때 내 손에는 네덜란드행 편도 비행기 표와 석 달 정도 아껴서 쓸 경비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더 준비해서 떠나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국민들을 뒷심으로 믿고 떠났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나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어서 여기까지 왔다.’(7월 5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강씨가 쓴 글)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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