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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랑의 무덤덤한 목소리 “아내 1주일 전 자살, 보험금 주세요”

입력
2018.09.18 04:40
수정
2018.09.18 07: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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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오사카 신혼여행 살인사건 범행 일지. 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오사카 신혼여행 살인사건 범행 일지. 강준구 기자

“사망보험금 좀 받으려고 하는데요.”

지난해 5월 4일 S화재 대전충청보상센터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22세 우모씨. 한달 전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아내가 사망했다는 말과 함께 보험금 1억5,000만원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설명해달라’는 보험사 요청엔 얼버무릴 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어쨌든 여행자보험에 가입했고, 여행지에서 사망했으니까 보험금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전화는 처음이었어요. 보험금을 달라고 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찜찜하던지.” 전화를 받은 보험조사관 A(49)씨는 단순한 사망사고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그것도 신혼여행지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잃었는데 일주일 만에 사망보험금을 달라면서 연락하는 유족은 흔치 않았다. 사망 장소도 외국이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을 텐데, 서두른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아내를 잃은 남편이라고 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건조했다. 슬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오히려 ‘자살은 보험금 지급사유가 아니다’는 말에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티를 내고 있었다.

전직 경찰 A씨는 전화를 받은 지 5일만에 현직 때 함께 일했던 세종경찰서 형사1팀장 유제욱 경위를 찾았다. 의심되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고는 관련 보험자료를 모두 넘겨줬다. 유 경위는 받은 자료를 차근차근 훑어보기 시작했다.

사망자는 19세 김모씨였다. 남편과 함께 신혼여행을 떠난 당일인 4월 24일 인천공항에 있는 S화재 영업점에서 여행자보험을 가입했다. 김씨가 사망하면 우씨가 1억5,000만원을 받고, 우씨가 사망하면 김씨가 5억원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여행 직전에 공항에서 보험에 가입한 것도 그렇고, 사망한 뒤에 바로 보험금을 받으려 했다고 하니 의심스러울 수밖에요.” 유 경위는 바로 두 사람에 대해 따져보기로 했다.

유 경위는 다음날 곧장 김씨 어머니를 만났다. 김씨 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사망했다는 연락이 왔는데, 딸이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갔다는 얘기는커녕 결혼을 했다는 소식도 못 들었어요. 딸이 자기 부모에게 그런 얘기도 안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우씨는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씨와 2015년 교제를 시작했다고 했다. 여러 차례 결혼을 하겠다고 얘기해 왔지만, 아직 김씨가 미성년자였던 탓에 가족의 반대는 완강했다. 그런데 우씨는 김씨가 임신을 했다는 거짓말을 할 정도로 결혼에 집착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김씨가 법적으로 성인(19세)이 된 지 이틀이 지난 4월 14일, 두 사람은 가족 몰래 혼인신고를 했고, 그로부터 열흘이 흐른 뒤 신혼여행을 떠났다.

 ◇남편의 비정상적인 행동 

김씨 어머니는 유 경위에게 ‘우씨가 의심스러웠다’고 반복했다. “25일 오전에 딸이 사망했다는 문자를 받고 다음날 새벽에 오사카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 아니 남편이란 사람이 실실 웃으면서 저희를 맞더라고요. 그러더니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면서 가버렸어요.” 사망 후 처리도 유난히 빨랐다. 사망 다음날 부검을 마치고, 바로 화장을 한 뒤 장례를 치렀다. 김씨 시신을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오는데 드는 비용(2,000만원)이 부담스러웠던 탓에 ‘우씨가 의심스러웠던’ 가족들도 별달리 반대를 하지는 않았다.

우씨는 김씨 가족에게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일본 현지 경찰도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일관된 남편의 진술에다 시신에 별다른 몸싸움 흔적이나 상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울증 약을 먹거나 병원을 다닌 적도 없어요. 새 직장에 취업하려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알아보던 애가 왜 갑자기 그런 선택을 했겠어요?” 김씨 어머니가 울먹였다.

우씨는 경찰에 불려 나와서도 ‘자살’을 주장했다. “숙소 욕실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서 욕실 문을 열어보니까 아내가 바닥에 쓰러져있었어요. 그 옆에 니코틴 원액과 주사기 두 대 가 있었고요. 그래서 신고했어요. 제가 직접 일본 경찰에다가요.“ 유 경위는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우씨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제가 일본어를 독학해서 좀 할 줄 알거든요. 일본 경찰이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지시를 하더라고요.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찾아가 아르바이트생한테 전화를 바꿔져서 숙소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고요.” 아내가 니코틴 원액을 주사해 자살을 했다는 것, 그 말은 끊어짐이 없었다. 청산유수처럼 말이 흘러 나왔고, 논리도 정연했다.

유 경위는 그때 ‘우씨가 범인일 수 있겠다’는 감이 왔다. “자기 아내가 죽었는데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하는 게 정상적인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나중에는 신이 나서 말을 하더군요. 설사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더라도 남편이라면 말이죠. 왜 내가 죽음을 막지 못했을까, 일말의 자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김씨 시신은 이미 화장으로 없어진 뒤였고, 일본 현지에서 별다른 부검 결과도 내놓지 않은 상황이었다.

감은 그저 감일 뿐. 남편이 범인이라면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정황이 필요했다. 먼저 김씨 가족이 우씨 친구로부터 받았다는 메신저 그룹채팅방 캡쳐 화면을 전달 받았다. 남성들만 30명 가까이 모여 있던 채팅방에서 우씨는 김씨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결혼을 불과 몇 달 앞두고서다. ‘목표가 있어서 데리고 있긴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그 목표가 뭔지 궁금하다’는 친구 질문에는 ‘두 달만 데리고 있으면 된다. 그 후에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목표’, ‘결혼’, ‘사망보험금’ 이런 단어들이 유 경위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의미 있는 진술들도 여럿 확보됐다. 우씨 지인은 “우씨가 ‘여자친구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을 모두 알고 있다는 또 다른 이는 “우씨가 친구들과 다같이 있을 땐 김씨에게 다정하게 굴다가, 단 둘이 있을 땐 욕설을 일삼았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아내가 사망한 것을 구실삼아 다른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접근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10대 여학생들 사진을 올린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속속 드러나는 정황 

무엇보다 부검감정서가 필요했다. 자살이 맞는지가 당장 궁금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반년이 지나도록 일본에서는 부검감정서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웠다. 우씨를 살인 혐의 피의자로 전환한 뒤 지금까지 모은 증거를 토대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았다. 11월 29일, 수사팀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던 우씨 집을 급습했다.

유 경위는 계획적 살인이라 믿었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인 만큼, 범행계획이 적힌 ‘무엇’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추리소설이나 수사 관련 전문서 등 범죄 관련 서적이 빽빽이 꽂힌 우씩 책장을 샅샅이 뒤지길 3시간, 우씨 일기로 보이는 스프링노트 5권을 손에 넣었다.

일기장엔 예쁘고 현명한 아내 얻기,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기, 좋은 지인을 두기, 인터넷에서 유명해지기 등 20대라면 누구나 꿈꿀 버킷리스트가 잔뜩 적혀 있었다. 그 중 한 문장이 유 경위 눈길을 끌었다. ‘40세 전까지 10억원 모으기’. 실제 일기장 구석구석엔 그 돈을 벌기 위한 계획들이 상세하게 담겨있었다.

우씨는 보험금을 타낼 계획을 2016년 3월부터 세워두고 있었다. 일기장에 ‘여자친구와 싸우고 설득해서 보험에 가입시킨다. 예상금액 10억’이라고 메모해 뒀고, ‘한 달에 한 번씩 싸워줘야 할 것 같다’ ‘나 없이 못살게 만들어야 한다’ 등 심리적으로 본인에게 의지하도록 만들기 위한 방법을 적어놓기도 했다. ‘주사기를 구하고 얼른 (니코틴을) 이○○에게 받아오자’ ‘동물을 어디서 찾을지 그게 제일 걱정이다. 어디에 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등 니코틴 주사를 준비한 흔적도 나왔다. ‘아내가 니코틴 원액으로 자살을 했다’는 우씨 주장과는 상반되는 대목이었다.

니코틴을 전해 받았다는 22세 여성 이모씨는 경찰이 압수한 우씨 휴대폰 통화내역에도 등장했다. “니코틴을 전해줬다는 말에 당연히 공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씨를 직접 만나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돌아왔다. “제가 니코틴 사준 건 맞는데요, 지금 형사님 얘기를 듣고 보니 저도 그걸로 죽을 뻔했던 것 같아요.”

이씨가 털어놓은 사연은 이랬다. 우씨와 이씨는 고교동창 사이로 2016년 12월 아산 시내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연락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우씨가 이씨에게 일본여행을 제안했고, “여행 경비를 다 대주겠다. 대신 전자담배에 사용하려고 하니까 퓨어니코틴(원액)을 인터넷에서 대신 구매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씨는 중국 사이트를 통해 퓨어니코틴(990㎎/㎖) 10㎖ 두 병, 아산시에 위치한 전자담배상점에서 퓨어니코틴 5㎖ 한 병을 사줬다.

이후 행적은 사건이 벌어졌던 신혼여행과 판박이다. 두 사람은 인천공항에서 해외여행보험에 가입한 뒤 일본으로 갔다. 차이는 니코틴 주입 방법에 있다. “저한텐 주사를 놓지는 않았고요. 숙취해소제라면서 종이컵에 뭘 따라서 주더라고요. 너무 역해서 한 입 마시려다가 다 뱉어냈어요. 그런데도 온몸이 욱신거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모두가 살인범 지목 

수사팀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가)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프로파일러들은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한 동기가 전무하며 우씨가 타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놨다. 거기에 우씨가 사이코패스검사(PCL-R)에서 26점(40점 만점) 정도로 높은 수준의 반사회성을 보인다는 상담결과도 알려왔다. 25점 이상이면 사실상 사이코패스로 봐도 무방한 점수다.

우씨는 여전히 ‘아내의 자살’을 고집했다. 일기장을 들이밀자 “보험금을 타려고 살인계획을 세웠던 건 맞지만, 실행은 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김씨 몸에 우씨가 니코틴을 주입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부검감정서가 더욱 절실했다.

올해 3월, 김씨가 사망한 지 11개월이 지나 부검감정서가 일본에서 도착했다. 경찰→검찰청→법무부→외교부→일본 외무성→일본 법무성→일본 검찰→일본 경찰을 거쳐 요청 서류가 가고, 다시 같은 단계로 서류를 전달 받는 국제형사사법공조 시스템상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은 국제형사공조에 비협조적인 나라로 유명했다.

“늦어서 답답하긴 했는데, 부검 결과는 딱 예상대로였습니다.” 일본에서 보내온 부검감정서는 살인범으로 우씨를 지목했다. 김씨 사인은 혈관 내 다량으로 투여된 니코틴에 따른 급성 니코틴 중독. 시신 왼쪽 팔에 두 개, 오른쪽 팔에 하나, 총 세 곳에서 주사바늘 구멍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에 대한 법의학자들 의견은 한결 같았다. “1회 주사 시에 바로 독성이 나타났을 것이고 오른팔이든 왼팔이든 세 곳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스스로가 아니라면 타인이 주사를 놨다는 것이고, 사망 장소에는 오직 남편밖에 없었다.

우씨는 완강했다. 부검 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듣자 ‘자살 방조’로 전략을 수정했다.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원해서 팔에 주사기를 꽂는 것까지는 도와주었지만, 피스톤을 직접 누른 것은 아내였다는 주장이었다. 유 경위는 우씨를 긴급 체포한 뒤 살인ㆍ살인방조ㆍ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한 뒤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지난달 30일, 1심 법원은 살인 혐의를 인정해 우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우씨는 예상대로 판결에 불복했고,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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