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정부 지원 정책이 미국보다 훨씬 많다. 반면 미국은 보조금을 주는 경우는 없어도 스타트업 창업자가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세금혜택 등 법이 잘 정비돼 있다. 한국도 정권에 따라 쉽게 바뀌는 정책보다 기업에 지속 가능한 안정감을 주는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광고 플랫폼 기업 몰로코의 안익진(39) 대표가 진단하는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의 문제는 ‘효율성과 합리성 부족’이다. ‘구글러’ 출신으로 스타트업 성공을 일군 안 대표는 “한국에서는 경험과 평판에 의존하는 분위기가 강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현실화하기 어렵다”면서 “아이디어가 인정받아 창업에 성공하더라도, 경영지원팀이 따로 있어야 할 정도로 신경 써야 할 부가적인 문제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박사과정에서 머신러닝을 공부한 안 대표는 구글에서 6년간 일한 경험을 살려 2014년 모바일 광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몰로코를 창업했다. 몰로코는 최근 12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는 등 4년간 총 200억원 규모를 유치했으며, 매해 매출 기준 6배 이상 성장해 전 세계 여섯 곳에 사무실을 설립하는 등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두가 ‘꿈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구글을 제 발로 나온 이유에 대해 그는 새로 떠오른 아이디어가 구글 안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안 대표는 “구글에 다니며 ‘유튜브 수익화’와 ‘안드로이드 빅데이터 구축’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세 번째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각 기업이 구글과 페이스북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이익을 얻도록 하자는 거였는데, 이건 구글 안에서 실행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구글을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구글에서 일하던 당시 안드로이드 데이터 총괄을 맡고 있던 안 대표는 90%가 넘는 앱이 수익화에 실패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사용자들에게 좋은 가치를 주는 앱조차 수익화가 안 돼 힘들어하더라”면서 “앱 개발사가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이 인스타그램처럼 페이스북이나 구글에 앱을 파는 방법밖에 없다는 건, 생태계 자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안 대표가 생각한 해결책은 ‘데이터의 활용’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생성해내고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와 수익을 연결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 구글과 페이스북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디지털 광고 시장의 90% 이상은 구글과 페이스북이 장악한 상태다.
몰로코는 각 기업이 스스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수익 모델이 안정되면서 다양해질 것이라 판단했다. 안 대표는 “몰로코는 각 기업이 자신의 데이터를 가공해 직접 광고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구글ㆍ페이스북에 필적하는 수준의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술로 광고 생태계 자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에 대적하는’ 몰로코는 올해 7월 구글의 클라우드ㆍ인공지능 개발자 콘퍼런스 ‘구글 넥스트’에 연사로 초청받았다. 그가 참여한 데이터 관련 세션은 ‘구글 넥스트에서 꼭 들어야 할 7대 세션’에 포함되기도 했다. 안 대표는 “20명도 안 되는 직원들이 클라우드 플랫폼을 잘 활용한 덕분에 글로벌 규모의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 구글에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라면서 “우리가 클라우드 플랫폼을 잘 활용했듯, 기업들이 몰로코라는 플랫폼을 잘 활용해 수익화에 성공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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