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20일 평양에서 다시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담판에 들어간다. 남북 간 구체적 경제협력 방안과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방점은 군사 분야에 찍힐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경협 문제는 미국이 이끄는 대북 제재ㆍ압박 국면에 가로막혀 있어 가시적 성과로 내세워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히 이번 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철수 방안 등을 끌어내 남북 간 실질적 군축 시대를 여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다.
일단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4ㆍ27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획기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개성에서 개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향후 역할에 힘을 싣는 한편 이산가족상봉 정례화 등 더욱 안정적인 남북 간 인도적 교류 협력 방안에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남북이 공감대를 형성해온 만큼 이산상봉 정례화와 서신교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사회문화 방면의 교류는 이미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각 사안에 대한 합의보다는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남북 간 교류를 확대해간다는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남북 간 경제협력에 대한 논의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라며 남북 간 경협을 통한 평화정착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신(新) 경제지도’라는 큰 틀에서 남북 간 철도ㆍ도로 연결 사업과 통일경제특구 설치 방안 등 남측의 대북투자 인프라 구축을 위한 방안이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방북단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급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것 역시 비핵화 진전에 따라 남측의 대규모 대북투자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비핵화 유인책을 숨기지 않고 내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남북간 경협이 정상회담의 가시적 성과로 전면에 부각되진 못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6ㆍ12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핵문제가 공전하며 여전히 대북제재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이번 회담이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촉진시키는 데 더 큰 비중이 있는 만큼 경협 분야에서의 명시적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구조에 있는 탓이다.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내세울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은 군사 분야에 쏠리고 있다. 경협과는 달리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구상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어느 정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은 이미 이번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군사분야 합의서’ 도출에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이나 유해 송환 문제 등은 지금과 같은 대북 제재 국면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며 “더욱이 북한 입장에선 군사분야 합의를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진정성이 있다는 대미(對美)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이번 군사분야 합의가 남북 간 실질적 군비통제(군축) 시대를 여는 분수령이 될 수 있느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3일 열린 서울안보대화(SDD) 기조연설에서 “남북은 군 당국 간 신뢰구축을 넘어 사실상 초보적인 수준의 ‘운용적 군비통제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군축은 통상 ‘신뢰구축-운용적 군비통제-구조적 군비통제’ 등 3단계로 이뤄진다. 남북 간 군사 대치 상황을 여기에 대입하면 1단계 신뢰구축은 군 당국 간 핫라인 설치와 상호 비방 중단이 해당된다. 2단계 운용적 군비통제는 비무장지대(DMZ) 내 병력 축소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해상과 공중에서의 완충 구역 설치 등이고, 3단계 구조적 군비통제는 병력과 무기 감축이 해당된다.
정 실장의 언급은 남북이 이미 군 통신선을 복구하고 전방 지역 확성기를 철거해 신뢰구축은 상당부분 이뤄진 데 따라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그 다음 단계인 ‘실질적 군축’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피력한 것으로 읽힌다.
남북은 이와 관련 지난 13~14일 열린 군사실무회담을 통해 DMZ 내 GP(감시초소) 일부 철수와 JSA 비무장화에 대한 최종 조율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DMZ 내 공동유해발굴은 남측 철원ㆍ김화와 북측 평강을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 등에서 진행키로 최종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을 지낸 문상균 예비역 육군 준장은 “GP 철수 등 실질적 병력 철수는 남북이 아직까지 가보지 않은 길”이라며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거쳐 행동으로 옮겨질 경우 남북이 실질적 군축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획기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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