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상생(相生)’이 시대의 화두(話頭)이다. 최저임금 인상, ‘갑질’ 문화 근절 등이 상생을 위한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반면 상생 정책들이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을 억제하고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상생은 공동체 내 구성원 간 ‘협력’을 의미하고, ‘경쟁’은 구성원 각자 생존을 위한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협력과 경쟁,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그 관계는 무엇일까? 하버드대 생물학 교수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윌슨(E. Wilson)은 ‘인간 존재의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생존경쟁은 ‘그룹 내 개인 간 경쟁’과 ‘그룹 간 경쟁’이 있는데, 인류사적으로 볼 때, 그룹 내에서 개인 생존을 위해서는 개인 간 경쟁이 중요하지만, 그룹 간 경쟁에서 그룹 생존을 위해서는 그룹 구성원 간 협력이 중요했다. 즉, 다른 그룹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군인ㆍ경찰과 같은 역할 분담을 하고 필요 시 개인의 생존 본능을 억제하고 희생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며, 그 결과 그룹 내 도덕ㆍ양심ㆍ명예 같은 가치가 장려돼 왔다. 인간 유전자에는 수백만 년의 적자생존 과정에서 진화ㆍ유전돼 온 ‘경쟁 DNA’ 와 ‘협력 DNA’ 가 모두 있다는 것이다.
그룹 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개인 간 경쟁과, 그룹 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그룹 내 개인 간 협력은 상호 충돌하는 측면과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협력을 조장하는 제도는 경쟁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상충할 수 있지만,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경쟁과 협력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윌슨 교수는 정치ㆍ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그중 어느 하나에만 완전히 의존할 수 없다고 한다. 만일 개인 간 경쟁만 강조하면 그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와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어렵고, 공동체 구성원 간 갈등과 사회 불안으로 그 사회는 와해될 것이다. 반대로 협력만 강조한다면 개인의 성취 동기와 창의성은 위축되고 사회발전에 필수적인 혁신과 기술개발이 안될 것이며, 인간은 오로지 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개미나 로봇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협력이나 상생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협력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구성원 간 협력을 위해서는 개인에게 어느 정도 불리하거나 손해가 되더라도 감내하거나 타협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개인이나 가족 또는 자기 집단의 이익과 배치되거나 조금이라도 손해가 발생한다면 협력을 안 하고 끝까지 투쟁하거나 반대하려 한다. 교통 신호ㆍ규칙을 잘 안 지키는 것, 공원 같은 공공재산을 오염ㆍ훼손시키는 것,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정규직의 반대, 소화제ㆍ진통제 등 단순의약품의 편의점 판매범위에 대한 이익단체 간의 오랜 대립 등이 우리 사회에서 협력이 잘 안 되고 있는 사례이다.
우리 사회는 경쟁도 제대로 안 이뤄지고 있다.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다는 데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콘센서스가 부족하고 경쟁과 기업의 창의적 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도 매우 많다. 100% 민간기업인 통신사가 제공하는 통신요금의 체계나 수준에 대해 정부가 법적 또는 합리적 근거도 없이 개입하려 하고 일부 시민단체도 가세하는 것이 좋은 예다. 또 경쟁은 ‘무한경쟁’이 아니라 경쟁의 규칙인 공정거래법 같은 제도ㆍ법률에 따른 공정한 경쟁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담합ㆍ탈세ㆍ불법로비 등 탈법ㆍ불법ㆍ편법을 동원한 경쟁이 만연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진정한 협력과 경쟁이 이뤄져야 하고 협력과 경쟁 간에 적절한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 협력이 자기나 자기가 속한 집단에 손해나 희생이 되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며, 경쟁도 그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하에 규칙과 법질서를 지키는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협력과 경쟁이 조만간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김병배 공정거래실천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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