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죽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죽음의 이유를 알려 주지 않는다. 고통은 오롯이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슬픔에 잠식된 채 온기 없는 일상을 버티고(‘살아남은 아이’), 친구를 외면한 아이는 죄책감을 떨쳐내려 몸부림친다(‘죄 많은 소녀’).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에서 살아 나왔다는 이유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살아 가기도 한다(‘봄이가도’).
갑작스러운 죽음, 그로 인한 상실과 죄책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014년 세월호 참사라는 ‘집단적 상실’을 경험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상실의 그늘 아래 놓여 있다. 사회 현실과 집단 무의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독립영화계에 세월호 참사의 그림자는 더욱 짙다. 상영 중인 독립영화 ‘살아남은 아이’(신동석 감독)와 ‘죄 많은 소녀’(김의석 감독) ‘봄이가도’(장준엽ㆍ진청하ㆍ전신환 감독) 모두 상실을 그린다. 신인감독의 작품이지만, 인간 내면을 성찰하고 우리 시대를 거울처럼 비추는 주제의식은 어느 영화보다 예리하다.
세 영화는 상실의 고통에 뿌리를 두고 각자 다른 결로 뻗어 나간다. ‘살아남은 아이’에서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 부부는 아들이 목숨 걸고 살린 아이 기현(성유빈)과 가까워지며 아들의 빈자리를 채운다. 기댈 곳 없이 방황하던 기현은 부부에게 마음을 열지만 점점 자라나는 죄의식을 견디다 못해 뜻밖의 진실을 털어놓는다.
‘죄 많은 소녀’의 영희(전여빈)는 친구가 죽기 전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몰린다. 유가족과 경찰, 담임 교사와 같은 반 친구들까지 영희를 의심하며 책임을 추궁하고, 위태롭게 버티던 영희는 결백을 증명하려 극단적 선택을 한다.
‘봄이가도’에는 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엄마와, 더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트럭 운전사,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가 나온다. 영화는 삶의 의미를 잃은 세 사람이 아주 사소한 기적을 경험한 뒤 서서히 일상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응시한다.
상실과 죄책감은 끝내 극복할 수도, 지워낼 수도 없는 것이다. “본능처럼 자신의 탓이 아니길 바라며 필사적으로 자기와 가장 먼 답을 도출해 내려는 가냘픈 인간성”(김의석 감독)이 서로 부딪히며 때로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나 참담해 어떠한 위로나 화해가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그 노력까지 무의미한 건 아니”(신동석 감독)라고 이 영화들은 관객에게 힘주어 이야기한다.
‘살아남은 아이’는 신동석 감독이 가까운 지인들과 사별한 경험과 이후 오래 붙들고 있던 애도의 감정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죄 많은 소녀’도 갑작스럽게 친구를 잃은 김의석 감독의 자책과 속죄가 담긴 자전적 영화다. 서로 다른 듯 닮은 두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우리 사회의 집단 죄의식을 건드린다. ‘물’이 죽음의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신 감독은 “젊은 감독들이 준비 중인 영화 중에도 죄책감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등을 다룬 작품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봄이가도’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의 삶을 직접 들여다본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은 2016년 극심한 사회 분열을 지켜본 신인감독 세 사람이 “증오가 만연한 사회에 영화를 통해 희망을 주고 싶어” 기획했다.
빼어난 완성도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는 독립영화가 잇달아 나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독립영화에 주어진 자리가 비좁다 못해 질식할 지경이다. ‘살아남은 아이’는 지난달 30일 개봉해 12일까지 8,332명과 만났다. 13일 나란히 개봉한 ‘죄 많은 소녀’와 ‘봄이가도’를 볼 수 있는 상영관은 전국에서 각각 72곳과 42곳뿐이다. 그나마도 예술영화전용관이고 일반상영관은 거의 없다. ‘죄 많은 소녀’를 담당한 홍보사 국외자들의 김지운 대표는 “과거 독립영화 화제작은 종종 10만 관객도 넘기곤 했지만 요즘엔 1만 관객 동원도 힘들 만큼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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