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15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실상 검찰 수사를 의뢰한 이후 석 달 만에 다시 한번 수사 협조 의지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상 초유의 대법원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현 시점에서도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할 것이며,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독립적으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실을 규명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이 같이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와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 의지도 재차 표명했다. 그는 “최근 사법부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현안들은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사명과 사법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법부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 번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사법부가 지난 시절 과오와 완전히 절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확고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법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도 강조했다. 그는 “법관 관료화와 권위주의 문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법관 승진제도를 폐지하고, 사법행정권이 재판에 개입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의 전면적ㆍ구조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주권자인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누구나 사법제도를 쉽고 평등하게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재판의 결과물인 판결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법관 제청과 헌법재판관 지명 등 공직 지명 절차와 사법행정 분야에서도 ‘대법원장의 권한 내려놓기’를 통해 법원 내ㆍ외부의 다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발언도 있었다. 김 대법원장은 “개혁 방안이 국민의 기대를 완전하게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다시는 이러한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3월에 설립된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의 제안을 대폭 수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사법발전위원회가 폭넓고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 매우 전향적인 여러 제안을 했고 이러한 제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인적ㆍ물적 분리, ▦윤리감사관 외부 개방직화 ▦법관 인사 이원화의 완성은 곧바로 시행할 수 있도록 신속히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이날 오전 11시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기념식은 사법부를 둘러싼 외부의 시선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해 ‘반성 모드’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고영한 차한성 전 대법관 등은 모두 불참했다.
행사에서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리는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1976년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서 유일하게 무죄 판결을 선고한 고(故) 이영구 판사와 성희롱 문제의 법적ㆍ제도적 해결의 기틀을 마련한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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