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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계 할머니 100여명에 집밥 배워 “살아갈 힘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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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계 할머니 100여명에 집밥 배워 “살아갈 힘 얻었어요”

입력
2018.09.13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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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각 사냥꾼’ 나카무라 유 

 3년간 90개 도시 할머니들 만나 

 한ㆍ일서 ‘행복 레시피’ 책 출간 

 “식재료 귀한 시절에 만든 요리 

 창의력ㆍ응용력은 상상을 초월 

 살아온 사연 들으며 인생도 배워” 

나카무라 유는 “할머니 집밥 레시피를 계승할 때 중요한 건 요리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보다 인생을 즐기는 마음을 잇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나카무라 유는 “할머니 집밥 레시피를 계승할 때 중요한 건 요리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보다 인생을 즐기는 마음을 잇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연애가 끝나고 일도 집도 없이 2년간 ‘길고양이 같은 생활’을 했다. 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집주인의 이야기와 함께 나눈 밥상을 영상과 출판물로 차곡차곡 정리했고, 이 독특한 작업이 세간에 알려지며 여행과 밥 먹기가 직업이 됐다. 여행가, 작가, 외식업 컨설턴트, 식재료 유통업자로 활동하는 일본인 나카무라 유(32)씨가 자신의 명함에 새긴 직함은 ‘미각 사냥꾼(Taste hunters)’. 2012년 12월부터 3년간 세계 할머니 100여명에게 집밥을 배운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 프로젝트는 유튜브 130만 조회를 기록, 동명의 단행본이 일본(출판사 기라쿠샤)과 한국(남해의봄날)에서 출간됐다.

5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나카무라 유는 “독특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제 본업이 무엇인지 묻는 분들이 많다”면서 “저와 미래 세대는 기존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직업이 대세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7일 2018 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 ‘지역을 바꾸어내는 세계의 혁신가들’ 사례 발표자로 한국을 찾았다.

대학 시절 시작한 취미가 직업이 됐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요리를 만들어주고 하룻밤 공짜로 묵는 여행을 시작했고, 유튜브로 이 여행을 중계했어요. 이 영상을 보고 자기 집에 초대하는 분도 있었고, 제가 갈 여행지에 묵을 만 한 집을 소개해주는 분도 있었죠. 요리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대학졸업을 앞두고 강행한 3개월간의 유럽 여행은 무탈하게 끝났고, 졸업 후 들어간 컨설팅 회사를 두 달 만에 그만둔 나카무라는 전문적인 ‘미각 사냥꾼’이 되기 위해 낮에는 출판사에서 편집 작업을, 밤에는 퓨전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웠다.

프리랜서 요리 연구가로 지내던 그의 일상을 다시 흔들었던 건 연애. 남자 친구와 이별 후 남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나카무라는 대학 시절 여행을 떠올렸고, 반경을 넓혀 전 세계를 누비며 전전을 시작했다. 단, 이번에 전전할 집은 평균나이 80세 이상의 할머니 댁으로 잡았다. 나카무라 유는 “할머니 손맛이 그립다기 보다는 혁신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저를 초청하셨을 때 ‘혁신의 사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저는 할머니들이야말로 0에서 1을 만드는 재능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식재료가 정말 없던 시절에 음식을 만들었던 터라 창의력, 응용력이 상상을 초월해요. 조지아에서 만난 할머니의 계란 요리는 맛만 보면 닭고기인지 생선인지 알 수 없는 맛이 나죠.”

나카무라 유. 남해의봄날 제공
나카무라 유. 남해의봄날 제공

포르투갈 항구도시 포르투에서 만난 마리아 로즈 할머니에게서 호박잼과 알레트리아를, 미크로네시아의 미치코 할머니에게서 휴일에 먹는 코스라에 수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올해 초 한국어판 책 출간을 앞두고 서울과 통영에서 한정식, 비빔밥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나카무라는 “세계 모든 할머니의 집밥 레시피가 그렇듯 한국 할머니의 집밥 레시피도 ‘적당히’가 너무 많아 재현하기가 힘들었다. 통영에서 배운 된장게찜은 수제 소스가 많이 들어가 레시피를 적어도 제가 재현할 수가 없다”고 웃었다. 나카무라는 도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라 타블 드 조엘 로부숑’의 고지마 셰프와 함께 할머니 집밥 중 몇 개 메뉴의 레시피를 계량화해 단행본에 소개했다.

3년 간 90개 도시를 전전하며 ‘할머니 헌팅’에도 요령이 생겼다. 일단 취재할 마을을 정하면, 손맛 좋은 할머니가 있는 본인 또래의 젊은이를 공략했다.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 말이라면 흔쾌히 들어주니까요. 또 제 또래는 영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 통역을 도움 받을 수 있거든요.” 전 여행지에서 발견한 질 좋은 식재료를 선물로 건네며 집밥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집밥이 익는 동안 할머니들은 지난 시절의 사랑과 시련을 들려주며, 시련당한 나카무라를 응원했다. “할머니들과 저의 결정적 차이는 인생을 대하는 기백이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간다’는 기백 한편으로 ‘아무리 애써도 안되는 게 있다’는 여유도 있죠.”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카무라는 촉망받는 요리사로 거듭났다. 2013년 세계여행을 하면서 발견한 질 좋은 식재료를 직접 만든 잡지와 함께 보내주는 ‘유 박스(You box)’ 프로젝트를 선보였고, 최근에는 요리 강연과 집필 외에 내추럴 와인과 크래프트 사케를 수입, 유통하는 일도 한다. “제가 할머니들의 집밥에서 힘을 얻었듯, 제 또래를 응원하고 싶었어요. 언제 실패를 경험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사회잖아요. 할머니들의 사연, 0에서 1을 만드는 레시피를 소개하면서 괜찮다고, 하나씩 대응할 수 있다고 전하고 싶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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