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 황의조 인터뷰
흥민이가 주장 맡고 많이 희생
9골 중 3골이나 볼 내주며 AS
앞으로도 더 도움 받고 싶어
황선홍 선배님 보며 축구 시작
대표팀 등번호 18번 고정하고
타깃형 스트라이커 계보 잇겠다
10번, 14번, 11번, 18번, 9번.
황의조(26ㆍ감바오사카)가 2015년 9월 처음 국가대표에 뽑힌 뒤 달았던 등 번호들이다. 번호가 들쑥날쑥 하듯 그의 활약도 부침이 많았다.
파울루 벤투(49) 감독 부임 후 첫 평가전이었던 코스타리카(2-0), 칠레(0-0) 평가전에서 황의조는 다시 18번을 받았다. 그의 위상은 전과 180도 달라졌다. 지금 ‘갓의조’ ‘킹의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소속 팀 합류 차 일본으로 출국하는 황의조를 13일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팀에서 빨리 오라고 성화여서 전날 밤 칠레전을 마친 뒤 3시간도 못 자고 오전 8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나왔다. 그러나 그는 피곤을 잊은 얼굴로 “관중들이 꽉 찬 경기장에서 함성을 들으며 경기했으니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미소 지었다.
‘인생역전’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8월 초 와일드카드(23세 초과)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에 이름을 올렸을 때만 해도 그를 향한 취재진의 첫 질문은 ‘인맥 논란’이었다. 황의조는 “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될 것”이라고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에서 9골을 터뜨리며 2연패를 이끌자 ‘인맥 논란’은 자취를 감췄다. 특히 대회 두 번째(첫 해트트릭은 바레인전) 해트트릭을 기록한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4-3)은 황의조가 ‘멱살캐리’(혼자 힘으로 멱살을 잡아 팀을 이끈다는 온라인 신조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이스’ 손흥민(26ㆍ토트넘)과 호흡도 척척 맞았다. 황의조가 넣은 9골 중 3골이 손흥민 발끝에서 나왔다. 누구보다 골 욕심 많은 손흥민이 주저 없이 황의조에게 볼을 내주는 모습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황의조는 “흥민이가 주장을 맡고 많이 희생했다”며 “흥민이는 어시스트뿐 아니라 언제든 득점도 할 수 있는 선수다. 그래도 앞으로 흥민이 도움을 받아 골을 더 넣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오랜 만에 받은 등번호 ‘18’에 대해 “앞으로 국가대표에서는 이 번호를 고정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18번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꼽히는 황선홍(50) 전 FC서울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라 더 의미가 있다.
황의조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축구를 즐기는 정도였지만 월드컵을 본 뒤 흠뻑 빠져 진짜 축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공격수였던 황의조의 우상은 황 감독과 안정환(42ㆍMBC 해설위원)이었다. 그는 “폴란드전에서 황 감독님이 넣은 골은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황의조가 프로 3년 차인 2015년 K리그 성남에서 15골 3도움을 올리며 만개했을 때 황 감독은 포항 사령탑이었는데 자신의 후계자로 주저 없이 타 팀 제자인 황의조를 지목하곤 했다. 황의조가 지난 해 여름 일본으로 이적하기 전 황 감독은 따로 시간을 내 밥을 사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황의조는 “감독님께서 선수 시절 한 골 한 골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임했는지 말씀해주셨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라 저에게 진짜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한국 축구의 타깃형 스트라이커 계보가 끊겼다는 우려가 나온 지 꽤 됐다. 황 감독 은퇴 후 수많은 ‘제2의 황선홍’이 명멸했다. 황의조도 진짜 ‘제2의 황선홍’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걸 잘 안다.
지난 11일 칠레전에서 그는 선발 출전했지만 상대의 엄청난 압박과 활동량에 밀려 아시안게임 같은 파괴력을 못 보여줬다. 황의조는 “황 감독님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제2의 황선홍’이라는 타이틀은 솔직히 욕심난다. 언젠가 감독님을 꼭 뛰어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아시안게임 때는 어디서든 득점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강했다. 국가대표에서도 그런 느낌을 쭉 이어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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