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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예단해 기각, 영장판사 월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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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예단해 기각, 영장판사 월권 논란

입력
2018.09.11 19:02
수정
2018.09.11 20:3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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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하지만 죄는 아니다” 사유

압수수색 필요성 따지면 되는데

유독 법원 관련 사건만 높은 잣대

검찰 “사실상 수사지휘” 불쾌감

여당, 사법농단 국정조사 촉구

영장전담판사들이 전직 고위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잇달아 기각하면서 이례적으로 “죄는 아니다”는 사유를 단 것으로 드러나자 논란이 거세다. 영장판사 권한을 넘어 유ㆍ무죄를 미리 예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ㆍ현직 법관 관련 영장에서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이중 잣대에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이 같은 기각 사유까지 등장하자 검찰은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다.

11일 검찰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0일 검찰이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인 유해용 변호사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면서 “대법원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고 사유를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또 “유 변호사가 반출ㆍ소지한 자료를 수사기관이 압수수색해 취득하는 것 역시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도 댔다. 앞서 이달 6일에도 같은 법원 이언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유 변호사 영장을 기각하며 “공공기록물관리법위반죄 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영장전담판사가 사건 본안에서 논할 판단을 압수수색 단계에서 따지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온다. 특히 압수수색은 범죄 정황에 따라 증거수집 위해 이뤄지는 것으로 구속영장과 비교해 기본권 침해 정도가 비교적 약하다.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통상 기각되는 경우가 적다. 법원통계월보를 보면 올 7월까지 전국 법원에 청구된 압수수색영장 14만1,381건 중 부분 기각된 영장은 1만5,697건(11.1%)이고, 이번처럼 완전기각된 경우는 1,422건(1.0%)에 불과하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 소명이 기준인 게 영장심사인데 유독 법원 관련 영장에서만 유ㆍ무죄를 예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재판연구관실 등 대법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사법부로부터 영장 없이 받으라(임의 제출)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원이 기각하는 것은 사실상 수사를 지휘하는 것이라는 불만이 검찰 내부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영장 기각사유 논란에 대한 법원 내부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 일선 판사들은 수사를 통해 드러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부적절한 행위를 문제 삼으면서도 “영장 기각은 결국 범죄 소명이 덜 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한 고법부장급 판사는 “당시 행위가 윤리적으로, 사법행정적으로 부당하다는 판단과 그것이 범죄인지는 별개 문제”라며 “검찰은 문건 반출이 범죄라고 전제하고 있지만 그 문건이 기밀인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소명 여부와 무관하게 피의사실에 기재된 행위가 죄가 되지 않으면, 법관으로서는 당연히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할 수 있다”며 “수사기록과 영장청구서, 전체 기각사유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일부 기각사유만 골라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장기각 사태를 보는 검찰과 법원 시각차가 이처럼 커 양측 긴장이 갈수록 고조될 전망이다.

한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11일 “국회 차원에서 사법농단 실체를 파악하고 사법농단 수사에 비협조적인 사법부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살펴봐야 한다”며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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